제753호 김금영⁄ 2023.08.01 09:54:56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래 캐시카우(주요 수익원)로 ‘슬립테크(Sleep+Tech 합성어, 수면기술)’ 시장에 주목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삼성전자, 야심작 ‘갤럭시 워치6’…건강관리 기능 강화 돋보여
7월 26일, 전 세계의 관심 속 열린 삼성전자 ‘갤럭시 언팩 2023’ 행사의 주인공 중 하나는 ‘갤럭시 워치6’ 시리즈였다. 특히 강화된 건강관리 기능이 주목받았다.
아직 삼성전자는 별도의 슬립테크 제품은 출시하지 않았지만, ‘헬스케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서 슬립테크 확장에 나서 왔다. 특히 모바일 사업에서 철수한 LG전자와 달리 자사 ‘갤럭시 스마트폰’과 ‘워치’를 활용해 경쟁력을 확보해 왔다.
기존에 삼성전자는 갤럭시 워치의 ‘바이오액티브 센서’를 활용해 ▲수면 중 뒤척임 ▲램(REM)수면 시간 ▲혈중 산소포화도 등 사용자의 수면 패턴을 알 수 있는 지표들을 제공해 왔다. 바이오액티브 센서는 광학심박센서(PPG), 전기심박센서(ECG), 생체전기임피던스분석센서(BIA) 등 3가지 핵심 센서를 하나의 작은 유닛으로 통합한 칩이다.
이 기능들을 강화한 갤럭시 워치6는 ▲수면 관리 ▲피트니스 코칭 ▲심장 건강 모니터링 ▲생리주기 예측 등 사용자에게 더욱 강력해진 통합 건강관리 솔루션을 제공한다.
특히 수면 관리 기능의 경우 총 수면 시간, 수면 주기, 깨어 있는 시간, 신체 및 정신 회복 등 5가지 요인을 각 항목별로 심층 분석, 종합해 수면 점수를 제공한다. 이 정보들을 사용자가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수면 점수를 기기 상단에 배치했고, 수면시간과 수면의 질도 한눈에 보여준다.
기존에 맞춤형 수면 코칭 프로그램은 갤럭시 스마트폰을 통해 제공돼 왔는데, 이제 사용자 손목에서도 갤럭시 워치를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갤럭시 워치6 시리즈는 사용자가 미리 설정한 수면모드 실행 시 수면에 방해되지 않도록 디스플레이 밝기를 자동으로 낮추고, 워치 하단 센서의 LED 녹색 불빛을 눈에 보이지 않는 적외선으로 전환한다.
갤럭시 언팩 행사에서 삼성전자 MX사업부장 노태문 사장은 “삼성전자는 수면 습관, 운동 코칭, 심혈관 모니터링 등 자신의 건강 상태를 잘 이해하고 관리할 수 있는 혁신적인 솔루션을 사용자에게 제공하기 위해 지속 노력하고 있다”며 “갤럭시 워치6 시리즈가 일상에서 사용자의 건강 습관 형성에 도움을 주는 파트너로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이밖에 자사의 건강관리 솔루션 ‘삼성 헬스’ 앱을 활용해 측정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면 패턴별 맞춤 가이드도 제공해 왔다. 스마트홈 플랫폼 ‘스마트싱스’ 앱을 통해서도 유사 기능을 선보이고 있다. 앞선 서비스들이 사용자의 건강 데이터를 직접적으로 진단·분석한다면, 스마트싱스 앱을 통해서는 비스포크 공기청정기를 무풍 모드로, 에어컨은 체온에 적합한 온도로 바꾸는 등 숙면을 위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LG전자, 숙면 위한 제품 ‘브리즈’ 등 적극 개발
LG전자는 사내외 아이디어를 활용하고, 전문 스타트업과 손을 잡는 등 슬립테크 시장 공략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7월 14일엔 스트레스, 불면에 시달리는 고객을 위한 마인드 웰니스(Mind Wellness: 건강하고 행복한 마음 상태) 솔루션 ‘브리즈’를 새롭게 선보였다. 숙면을 통해 마음건강까지 챙기겠다는 의도다. 브리즈는 LG전자의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제품이나 솔루션 경험을 전하는 마케팅 플랫폼 ‘LG 랩스(Labs)’의 첫 제품이다.
브리즈는 실시간으로 사용자의 뇌파를 측정, 조절을 유도하는 콘텐츠를 제공해 안정적인 컨디션을 만들어 주는 마인드 웰니스 솔루션으로, 고객에게 산들바람(breeze) 같은 상쾌함을 제공한다는 뜻을 담았다. LG전자는 올해 초 미국 CES 2023에서 수면케어 솔루션으로 브리즈를 처음으로 공개한 뒤, 제품 업데이트 과정에서 마인드 웰니스 솔루션으로 확장한 바 있다.
브리즈는 뇌파를 측정할 수 있도록 귀 모양에 맞춰 인체공학적으로 디자인된 무선 이어셋과 뇌파 조절 유도 콘텐츠를 제공하는 앱으로 구성됐다. LG전자 측은 “차별화된 뇌파 감지 기술을 기반으로 뇌파를 실시간 모니터링해 사용자의 상태를 측정하고, 스마트폰에 기록된 생활 데이터와 연계해 안정과 숙면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제공하는 방식”이라며 “사용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더욱 개인화된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한다”고 소개했다.
브리즈엔 좌뇌와 우뇌에 각각 들려주는 주파수의 차이를 이용해 상황에 맞는 적절한 뇌파를 유도하는 뇌파동조 원리가 적용됐다는 설명이다. 예컨대 깊은 수면 상태에 해당하는 2Hz 대역의 뇌파를 유도하기 위해 왼쪽 귀와 오른쪽 귀에 2Hz 주파수 차이가 나는 소리를 들려주는 방식이다.
특히 고정된 주파수를 반복해 들려주는 스태틱 바이노럴 비트(Static Binaural Beat)와 LG전자가 자체 연구개발한 다이내믹 바이노럴 비트(Dynamic Binaural Beat)를 함께 제공한다. 실시간으로 바뀌는 사용자의 상태에 맞는 적절한 주파수 소리로 안정, 숙면에 적합한 뇌파를 유도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앱은 ‘마인드케어’와 ‘슬립케어’ 모드로 나뉜다. 필요한 모드에 따라 안정 및 숙면을 유도하는 주파수의 소리, 또 이와 함께 들을 수 있는 90여 종의 콘텐츠가 구비됐다. 루시드폴 등 국내외 아티스트들이 작곡한 자장가, ASMR 사운드 등으로 구성됐다.
마인드케어 모드를 활성화하면 심리적 안정 상태를 나타내는 알파파를 유도하는 사운드와 호흡 가이드로 긴장, 불안 상태를 이완하는 데 도움을 준다. 슬립케어 모드는 수면 상태에 나타나는 세타파와 델타파를 유도해 깊은 잠에 들도록 도와준다. ▲비 내리는 숲 속 풀벌레 소리 ▲졸졸 흐르는 숲 속의 작은 시냇물 ▲비 오는 늦은 밤 골목길 등 취향에 맞는 분위기도 고를 수 있다. 수면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그래프도 보여준다.
LG전자 측은 “고려대학교, 분당서울대병원과 각각 임상실험을 진행해 브리즈 착용 시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불리는 코르티솔 측정치가 유의미하게 감소하고, 잠들기까지 걸리는 시간·수면 중 깬 시간 등이 감소하는 것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브리즈를 개발한 LG전자 사내독립기업(CIC) 슬립웨이브컴퍼니의 노승표 대표는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며 스트레스와 불면으로 고생하는 고객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에 착안했다”며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마인드 웰니스 솔루션으로 새로운 고객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슬립테크 전문 스타트업과의 협업도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해 12월 에이슬립과 수면 분야 연구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LG전자는 모바일 앱 ‘꿀잠 온도’를 7월 출시했다. 꿀잠 온도 앱은 에이슬립의 ‘수면 단계 측정 인공지능(AI)’을 통해 사용자의 수면 단계에 따라 에어컨 온도를 자동으로 바꿔주는 서비스로, LG전자의 가전제품에 적용됐다.
기존 에어컨은 예약 모드를 통해 설정된 프로그램으로 작동했는데, 잠을 자고 있는 사용자의 호흡 패턴 등을 분석해 실시간으로 온도를 조절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뒀다. 이번 앱은 테스트 용으로, 7월부터 두 달 간 최대 1000명을 대상으로 베타 테스트를 진행한다. 침실에서 LG전자의 씽큐(ThinQ) 앱과 연동 가능한 에어컨을 사용하는 고객과 안드로이드 OS(운영체제)를 사용하는 고객은 체험 서비스에 참여할 수 있다.
40조 규모 슬립테크 시장 선점 경쟁 치열
대기업들이 슬립테크 시장 선점 경쟁에 나선 건 기존 캐시카우가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 삼성·LG전자 양사 수익의 중심은 반도체와 가전제품 시장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와 글로벌 경기침체로 지난해부터 시작된 불황이 오랜 시간 이어지며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7월 말 발표한 2분기 실적에서 반도체 부문에서만 4조 3600억 원의 적자를 냈다. TV(VD)·가전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9% 줄어든 14조 39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9% 줄었다.
LG전자는 올 1분기 가전 부문에서 사상 처음으로 영업이익이 1조 원을 넘고, 2분기에서도 호실적을 거뒀지만, TV 사업 부문은 코로나19 사태 당시 급격하게 반짝 호황을 입었다가 이후 수요 역성장으로 지난해 4분기 적자를 기록하는 등 변동성의 폭이 컸다. 7월 27일 열린 2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김이권 H&A(Home Appliance & Air Solution) 경영관리담당 상무는 “하반기엔 마케팅 비용 증가가 필요해 1분기와 같은 수익성 확보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이처럼 여전히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경기침체로 인한 불확실한 시장 전망 속 새로운 캐시카우 발굴은 선택 아닌 필수가 됐고, 여기에 슬립테크가 들어맞았다는 분석이다.
슬립테크 시장의 성장은 앞서 예견됐다. 일상생활에 첨단 기술이 스며들고, 사람들이 보다 높아진 삶의 질을 원하면서 수면 시장에 대한 관심도 커진 것. 특히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는데, 자연스럽게 숙면과 건강과의 연결고리도 주목을 받았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진행한 ‘잠자리 형태 및 침대 매트리스 관련 U&A(고객의 사용행동과 태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95.1%가 ‘양질의 수면에 관심이 있다’고 응답했다. 국내 수면장애 진료 환자 또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1년 수면장애 진료 환자 70만 9233명으로, 5년 전인 2016년(49만 4915명)과 비교해 43.3%나 늘었다.
이에 따라 슬립테크 시장의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비전게인은 글로벌 슬립테크 시장 규모를 지난해 약 161억 달러(약 21조 원)에서 올해까지 매년 연평균 22%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마켓인사이트 또한 슬립테크 시장이 2026년 321억 달러(42조 1000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봤다.
삼성·LG전자도 점차 판을 키우는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기존에 폐업했던 의료기기 수입업 허가를 2월 다시 획득했다. 2014년 의료기기 수입업을 허가 받았다가 2020년 잠정 중단한 지 3년 만이다. 업계는 삼성전자가 자사 헬스케어 분야 강화에 힘을 실으며 본격적으로 슬립테크 시장 공략에 나선 조치로 보고 있다. LG전자 또한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자사 경영 목적에 ‘의료기기의 제작 및 판매업’을 추가했다.
삼성전자는 삼성 헬스의 미래 전략 중 하나로 ‘수면 기능’을 꼽기도 했다. 5월 23일 열린 미디어 브리핑에서 혼 팍 삼성전자 MX사업부 디지털 헬스팀장(상무)은 “2012년 출시한 삼성 헬스는 매월 전 세계 6400만 명이 사용하고 있다. 특히 수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점점 높아지며 수면 기능 사용자는 지난해 대비 약 2배가량 증가했다”며 “갤럭시 워치 전체 사용자 중 절반이 매주 수면 기능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중 40%는 최소 주 3회 이상 꾸준히 수면 기능을 사용하고 자신의 수면 건강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 삼성 헬스와 갤럭시 워치를 통해 사용자가 자신의 건강 상태를 보다 정확히 이해하고 꾸준히 관리할 수 있도록 혁신적인 기능을 지속 선보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7월 12일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2030년 매출액 100조 기업으로 도약의 포부를 밝히며 신사업 동력 확보 부문에서 ‘디지털 헬스케어’를 강조했다. 조주완 사장은 “좋은 제품을 만드는 최고 가전 브랜드에 그치지 않고, 고객의 다양한 공간과 경험을 연결하고 확장하는 ‘스마트 라이프 솔루션 기업(Smart Life Solution Company)’으로 도약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