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은 대한민국 헌법이 태어난 지 61돌, 즉 환갑을 맞은 제헌절이었다. 비록 지구촌은 점차 고령화시대로 탈바꿈해 가고 있다지만, 60 환갑이란 결코 짧은 세월은 아니다. 61년 전인 1948년에 최초로 실시된 5·10 총선에서 뽑힌 제헌의원들은 민주주의를 배운 적도, 경험한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헌법을 만들 전문지식이라고는 전무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제헌의원들이 신생 독립국가가 된 우리나라의 기초가 될 헌법과 정부조직법 등 각종 제도들을 신속하게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통치에서 탈피, 하루속히 자주·자유·민주·독립국가를 세워야 하겠다는 애국심의 발로 덕분이었다. 그때는 아예 회의 규칙을 정한 국회법도 없었다. 그런데도 의원들은 품위와 애국심의 충정을 잃지 않았다. 서로 자제하고, 양보하고, 절충해서 헌법을 만들고, 정부조직법 등을 차근차근 만들어 나라의 토대를 쌓고 다져 나갔다. 때문에 그 같은 제헌의원들의 애국심을 배우려는 국회의장배 대학생 토론대회가 국회에서 이틀 간 열렸다. 아울러 헌정기념관에서는 제헌 61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런 가운데 학생과 외국 귀빈들까지 몰려든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작 현역 국회의원들은 여야 동시 점거 농성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희극을 벌였던 탓에 국제적 망신거리만 만들어낸 것이다. 이러자 김형오 국회의장은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을 불러서 최대 쟁점법안인 미디어법을 오는 31일까지 표결처리하자는 제안 등 중재안을 내놓았다. 이에 한나라당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반응인데 반해, 민주당은 표결처리라는 전제가 붙으면 안 된다며 거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야는 17일의 제61회 제헌절 행사가 끝날 때까지는 본회의장에 각기 2명씩만 배치한 채 일단 철수하기로 합의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제헌절 기념식 등에 참석하는 외부 손님들에게 단체로 점거 농성하는 망신스러운 모습을 보이기가 민망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헌절 경축 행사에는 입법·사법·행정의 주요 인사뿐 아니라 각계의 국민 대표와 외국 사절을 포함한 1천600여 명이 참석하게 돼 있어, 여야는 이만은 결코 결례와 무례를 저질러서는 곤란함을 통감한 것 같아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그러나 ‘국회의 생일’인 제헌절을 맞아 외부 손님 눈치만 보는 국회가 아니라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을 두려워하는 참된 국회로 거듭나기를 새삼 촉구해 본다. 아무튼 여야는 동시 농성을 한시적이지만 이틀 만에 풀고, 제헌절 경축행사를 치른 뒤 당초 약속대로 본회의장 점거 농성을 다시 계속함에 따라, 이번 임시국회가 종료되는 25일까지 여야 간 대립은 쉽사리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임시국회 최대 쟁점법안인 미디어법과 비정규직법 개정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해 온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15일 국회 본회의에서 레바논 평화유지군(PKO) 파병부대의 활동기간 연장 동의안을 표결처리한 ‘원 포인트 본회의’를 열었다. 그런 뒤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그대로 계속 앉은 채 동시 농성에 돌입하는 헌정사상 초유의 희극을 벌였던 것이다. 16일 밤 10시부터 17일 낮 12시까지 14시간 동안 휴전 한 뒤 다시 동시 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사태에 전직 국회의장들을 비롯한 정치 원로들이나 전문 학자들의 비판과 원성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민들과 젊은 학생들이나 심지어 가정주부들에 이르기까지도 최근 여야 국회의원들이 벌이고 있는 ‘코미디’ 같은 정치행태는 ‘애들만도 못한 짓’이라는 비난들을 퍼붓고 있다. 이런 가운데 김형오 국회의장은 17일 오전 제헌절 경축사를 통해, 지금처럼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정치 풍토를 하루속히 복원하기 위해서는 개헌이 불가피하다며 개헌론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이기도 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