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진행 중인 국정감사에서 다 아는 얘기지만 그래도 충격적인 사실이 또 한 번 폭로됐다. 중소기업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지고 예산을 쓰는 중기청이라는 곳에서 유통체제를 개선한다면서 작년 12월에 대형마트를 돕기 위한 ‘작전’을 입안했다는 내용이다.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입수한 중기청의 '중소소매업 유통체계 개선사업'에 따르면 “농산물은 농협, 공산품은 대형마트”를 통해 구매하는 물류체계 계획이 수립됐단다. 한국 정부-공무원이 일하는 방식에 이력이 났지만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공산품은 대형마트를 통해’라는 겁나는 아이디어를 중기청에서 쉽게 낼 수 있는지…. 이제 상당히 드러났지만 대형마트는 중소상인을 죽이는 지름길이다. 대형마트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미국에 사는 한인들에게 들은 적이 있다. “월마트가 생기기 전만 해도 주말에 플리마켓(벼룩시장)에 좌판만 깔아놓아도 돈 세느라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장사가 잘 됐지만, 월마트가 생기면서 이런 호경기가 싹 사라졌다”는 푸념이었다. 이렇게 월마트 같은 대형마트는 중소상인의 씨를 말리기 때문에 미국에선 주민들이 반대하면 월마트가 절대로 그 지역에 들어가지 못한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세금 수입에 도움이 된다”며 대형마트에 입지까지 마련해 주면서 ‘초빙’을 한다. 지역 경제의 근간인 중소상인이 죽을 것이란 생각을 도대체 하고는 있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재벌 위주 경제의 ‘달콤한 맛’을 공무원들이 보느라 정신들이 나간 것인지…. 지난 추석 때 보니 “차례 용품은 전통시장에서 사야 20%가 싸다”는 둥의 뉴스가 나왔다. 당연한 얘기 아닌가? 죽지 않으려 아등바등 물건을 파는 시장 상인들과 대기업이 가격을 조정하는 대형마트 사이에 가격 차이가 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나 아무리 20%가 싸더라도 도대체 요즘처럼 너나없이 차를 몰고 쇼핑을 가는 세상에, 주차장 빵빵한 대형마트를 제쳐두고 차 댈 곳이 없을 게 뻔한 시장통을 찾아갈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될는지…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다. 내가 보는 한국 상권은 이렇다. 일부러 비싸게 값을 붙여 놔야 더 잘 팔리는 백화점이란 특수 상권, 그리고 싼 물건 값보다는 ‘한 자리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는 대형마트, 그리고 나머지는 ‘먹고 살기 위해 장사를 하는’ 중소상인들이다. 앞의 두 상권은 가격을 낮추든 높이든 완전히 재벌 마음대로다. 나라 경제를 이렇게 소수의 손에 집중시켜도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하는 관료-정치인들의 배짱이 그저 무서울 뿐이다. 한국 대형마트를 놓고 ‘양판 할인점’이라고 하지만, 맞지 않는 말이다. 양판할인점이란 글자 그대로 많이, 값싸게 파는 곳이다. 미국 대형양판점의 특징은 종업원 숫자가 아주 적다는 것이다. 철지난 옷을 파는 3층짜리 상점에 간 적이 있었는데, 관리 직원이 열 명이 채 안 되는 것으로 보였다. 철지난 옷을 아주 값싸게 파는 대신 ‘멋진 진열’이란 개념은 없었다. 손님들이 마구 파헤치고 입다 던져 놓은 옷들이 여기 저기 쌓여 있었고, 아마도 하루 몇 번 정도만 ‘알바생’을 써서 옷 정리를 시키는 것 같았다. 인건비가 비싼 미국에서 양판할인점의 특징은 이렇게 종업원 숫자를 최저로 줄인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에선 사람값이 워낙 ‘파리값’이라 그런지 대형마트들은 종업원을 듬뿍듬뿍 쓴다. 이렇게 노동력이 염가에 착취당하는 모습도 보기 싫다. 대형마트의 횡포를 막아야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상인들이 살 텐데… 목숨이든 장사든 죽기 전에 막아야 살지, 일단 죽은 다음에는 살리지 못한다. 다음 선거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치인이 나오고, 대량 지지를 받아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