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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나홀로 세계여행 - 러시아]크렘린은 비밀스럽다고? 자본주의 20년만에 반짝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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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33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5.06.04 09:16:00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지난 호에 이어 모스크바 2일차 여정을 소개한다.

몽환적인 분위기를 지닌 성바실리 성당

성바실리 성당은 양파 모양을 한 47m 높이의 중앙 지붕과 서로 다른 크기와 모양, 색깔, 무늬를 지닌 8개의 돔이 중앙 지붕을 둘러싸고 있다.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러시아 정교회 교당이다. 이반 대제가 몽골 카잔 칸을 항복시킨 것을 기념해 1555∼1560년 건축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는, 신비스러울 만큼 아름다운 바실리 성당을 배경으로 수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러시아 정교 수도사 성바실리의 이름을 딴 성당에는 많은 관람객들이 줄지어 입장해 성당 내부 곳곳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성당 내 작은 예배소에서 남성 사중창단이 만들어 내는 찬송가 선율은 천상의 소리에 가까울 만큼 조화롭다. 다만, 바실리 성당이 너무 아름다워 이반 대제는 이처럼 아름다운 성당을 다시는 짓지 못하도록 설계자인 포스토닉과 바르마의 두 눈을 뽑아버렸다는 가슴 아픈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양파 모양을 한 성바실리 성당.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러시아 정교회 교당으로, 이반 대제가 몽골 카잔 칸을 항복시킨 것을 기념해 1555~1560년에 걸쳐 건축했다. 사진 = 김현주

광장 안 굼 백화점은 19세기말 건물로 사회주의 당시 국영 백화점으로 출발했으나 지금은 고급 명품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베이지색으로 길게 늘어선 백화점 건물이 광장의 역사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아는 듯 멋쩍게 서 있다.

아, 크렘린!

러시아어로 ‘성채’를 의미하는 크렘린은 러시아 정치와 권력의 중심이자 러시아 역사가 응축된 곳이다. 성벽은 5각형으로 총길이 2.2km의 드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12세기에 목조로 건축됐다가 1812년 나폴레옹 군대의 모스크바 입성 시 대화재로 소실된 것을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했다.

▲러시아 정치와 권력의 중심이자 러시아 역사가 응축된 크렘린. 5각형 구조에 총 길이 2.2km의 드넓은 면적을 자랑한다. 사진 = 김현주

궁전을 비롯해 5개의 망루, 우스펜스키 성당, 아르항겔스크 성당 등 수많은 건축물이 감탄을 자아낸다. 건물도 건물이지만 스탈린, 흐루시초프, 브레즈네프, 고르바초프 등 이곳에서 세계를 호령했던 러시아 영웅호걸들의 얼굴이 교차하니 역사의 흥망성쇠가 덧없다.

예술-젊음이 공존하는 아르바트 거리

모스크바강을 끼고 이어진 성벽을 따라 걸어 아르바트 거리에 닿는다. 오늘 날씨가 무더워 지치지만 거리 악사와 화가들이 활동하는 멋진 젊음과 유행의 거리, 예술의 거리를 보는 색다른 느낌이 고단함을 달랜다. 푸시킨, 투르게네프 같은 대문호들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구 아르바트 거리가 예술의 거리라면 신 아르바트 거리는 젊음의 거리, 대학로 분위기다. 기념품 가게, 헌책방 이외에도 거리는 각종 음식점들로 넘친다. 페레스트로이카 직후 경제 파탄으로 남루하기 짝이 없었던 러시아가 20여 년이 지난 지금 환골탈태하고 있음을 이곳 아르바트 거리에서 확인한다. 러시아 개방 이후 밀려들어온 세계 각국의 문물은 아르바트 거리에 자리 잡은 수많은 음식점의 종류로 금세 알 수 있다.

러시아식 초대형 고층 건물

아르바트 거리가 끝나는 서쪽 지점에 우뚝 선 러시아 외무성 건물의 꼭대기 첨탑이 화려함을 넘어 거대한 위용으로 다가온다. 건물이 위치한 작은 광장을 벗어나 강변으로 한참 걸어 내려갔는데도 여전히 우뚝 서 있다. 러시아식 고층 빌딩의 전형으로, 이와 거의 비슷한 모양의 대형 고층 건물이 모스크바 대학, 우크라이나 호텔 등 6개가 더 있다고 한다.

모스크바강 유람선에 올라

조금 더 걸어 키엡스카야 역 부근 강변 선착장까지 갔다.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2시간짜리 코스 유람선이 떠날 때까지 1시간 남았다(표 1인당 500루블, 약 2만원). 유람선 출발까지 남은 1시간을 선착장 바로 길 건너편 그늘이 풍부한 작은 공원에서 휴식하며 보냈다. 공원은 소담하지만 술꾼들과 불량 청소년들이 독차지해 은근히 신경 쓰였다. 하지만 낯선 이의 존재를 의식하는 듯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꼭대기 첨탑이 화려한 러시아 외무성 건물. 소비에트식 초대형 건물의 전형이다. 사진 = 김현주

유람선은 모스크바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모스크바강은 수로를 통해 백해, 발트해, 카스피해, 심지어 흑해 등 주변 모든 바다와 연결된다. 선착장을 떠난 유람선은 노보데비치 수도원, 레닌 중앙 스타디움, 모스크바 대학의 모습을 조금씩 보여주며 남행한다.

고리키 공원에는 휴식을 즐기는 모스크바 시민들의 모습이 여유롭게 펼쳐진다. 유람선이 크렘린 서쪽 성벽에 가까이 접근하며 뱃길을 잡으니 그곳에 들어찬 종루와 성당 등 건축물들을 다른 각도에서 조망하는 기회를 덤으로 누린다. 카메라에서 손을 놓을 수 없는 멋진 풍경의 연속이다.

오늘 유람선 승선은 모스크바를 입체적으로 보여 주기에 충분한 이벤트다. 뱃길 따라 이어지는 강변 산책로에는 연인, 가족 단위로 나온 사람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개혁개방 20여 년의 성과는 이처럼 곳곳에서 드러난다. 강변에 즐비한 교회, 성당, 관청, 호텔, 아파트 등 많은 건물들은 유람선 승객들에게 쉬지 않고 다양한 풍경을 선사해 2시간 동안 지루할 틈이 없다.

유람선이 회항하는 곳 근처에는 구세주 성당이 있다. 1812년 러시아가 나폴레옹 군대의 침략을 물리친 것을 기념해 훗날 건축한 러시아정교 성당이다. 비잔틴 양식의 성당 내부는 성화들로 화려하게 장식됐다고 하지만 선상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일정이 얄궂다.

샹들리에가 아름다운 모스크바 지하철

모스크바 시내 관광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온다. 1960년대에 건설한 모스크바 지하철은 동서냉전 시절 핵전쟁에 대비한 방공호 겸용으로 건설해 매우 깊다. 도심 순환선은 특히 그렇다. 깊기로 유명한 서울지하철 2호선 이대입구역이나 5호선 여의나루역보다 훨씬 더 깊다.

▲화려한 샹들리에와 벽장식을 볼 수 있는 모스크바 지하철역 내부. 1960년대에 건설됐는데, 동서냉전 시절 핵전쟁에 대비한 방공호 겸용으로 건설해 매우 깊다. 사진 = 김현주

깊은 지하철역을 오르내려야 하는 시민들을 배려한 듯 내부 장식은 화려하다. 샹들리에와 벽장식이 화려한 모스크바 메트로 역사는 시민들의 피곤한 일상, 시달리는 출퇴근길에 조금은 위안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상트페테르부르크행 야간 열차

호텔에 맡겨 놓은 가방을 찾아 열차역으로 향한다. 모스크바엔 장거리 기차역이 여럿 있는데 목적지에 따라 상트페테르부르크 방면 열차는 레닌그라드스카야, 시베리아 방면은 카잔스카야, 발틱 방향은 벨라루스카야 등 각각 다른 역에서 출발한다.

마찬가지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행 열차는 모스크바스카야 역에서 떠난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상트페테르부르크행 열차는 저녁 9시 이후 거의 10∼15분 간격으로 떠난다. 거의 모두 가족, 친구, 연인 단위 휴가 승객들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어떤 곳일까 하는 궁금증을 억누르기 어렵다.

여기에도 중국인 단체 관광객

열차 출발까지는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았다. 무려 3시간…. 2층 대합실에서 하염없이 기다린다. 냉방이 없는 대합실은 한낮 열기로 달구어져 찜통이다. 드디어 열차에 오른 시각은 자정이 지난 0시 54분이다. 그런데 내가 탄 11호 차는 공교롭게도 승객 대부분이 중국 단체 관광객들로 왁자지껄 시끄럽다. 이제는 전 세계 어디를 가도 그들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 시작일 뿐이다. 중국에서 아직 해외관광은 부자들의 전유물이지만 중산층까지 합류하면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 어렵다.

▲굼 백화점 전경. 19세기말에 지어졌는데, 고급 명품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 걸 볼 수 있다. 사진 = 김현주

내가 탄 컴파트먼트의 동행은 바로 그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의 러시아 현지 가이드인 중국 남성이었다.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그는 중국 길림성 지안(集安) 출신이라고 한다. 지안에 가본 적이 있다고 하니 매우 반가워한다.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 무례하고 매너가 없어서 자기도 힘들다고 한다. 이번에 인솔하는 39명은 중국 광동성 심천에서 왔단다. 한국이나 일본 관광객들은 조용한데 중국 관광객들만 유독 시끄럽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모스크바강 유람선이 회황하는 곳에서 만난 구세주 사원. 1812년 러시아가 나폴레옹 군대의 침략을 물리친 것을 기념해 훗날 건축한 러시아정교 성당이다. 사진 = 김현주

열차가 출발하고 에어컨이 가동되니 항공기보다 결코 싸지 않은 편도 12만 원 짜리 2등 침대칸은 쾌적해진다. 소음과 진동이 적은 쾌속 야간열차는 모스크바에서 북북서 방향으로 700km 떨어진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8시간 만에 편안히 데려다 준다. 새벽에 눈을 떠 창밖을 보니 끝없이 펼쳐지는 자작나무 숲 사이로 북방의 아침 햇살이 거의 수평으로 차 안에 쏟아져 들어온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 슈피리어 호안에서 봤던 바로 그 원시림이다.

러시아의 광활한 대지를 느끼는 사이 열차는 아침 9시 정시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닿는다. 역 앞 풍경이 유럽 여느 도시 못지않게 멋지니 이탈리아 피렌체 중앙역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기차역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시내 호텔로 향한다. 오전 11시, 이른 체크인이지만 다행히 환영해준다. 첫 인상이 상쾌한 새로운 도시를 탐험하려니 마음이 들뜬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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