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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기업: 알바천국] 기업 광고가 이렇게 정치적일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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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36호 윤지원⁄ 2017.05.19 10:34:09

▲19대 대선 개표방송 도중 온에어 된 알바천국의 '알바 선진국' 광고.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지난 5월 9일, TV로 19대 대선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시청자의 눈길을 끄는 새 광고 한 편이 나왔다. 첫 장면에서 떠오르는 태양으로 애국가를 연상시킨 이 광고는, 정의의 여신 동상과 함께 “이제부터 이 나라는 정의로운 나라”라는 말과 자막으로 이어졌다. 알바천국의 새 광고는 이날 당선된 새 대통령이 여러 가지 이상적인 가치 실현을 추구할 것을 기대하는 내용으로 이뤄졌다. “정의로운 나라, 평화로운 나라, 공부하기 좋은 나라,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 여성이 당당한 나라, 노후 걱정이 없는 나라” 등을 차례로 선언하는 발언 뒤에, "알바(아르바이트생)가 좋은 나라"도 꼭 만들어달라는 당부가 얹힌다.


날이 날인데도, 이날 선거나 새 대통령 등을 언급한 광고를 내보낸 기업은 알바천국이 유일하다시피 했다. 이를 본 시청자 상당수가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이 광고에 대해 언급했다. 그룹 구구단의 멤버 세정이 새 모델로 발탁된 것에 대한 반응이 주를 이뤘지만, 이를 제외한 나머지 댓글은 대부분 “기막힌 타이밍”이라며 대선 당일 새 정권에 당부하는 광고를 내보내는 시의성과 기존에 보기 드문 정치적 발언을 담은 과감함을 언급했다.

이토록 조심스런 광고라니

광고 초·중반까지 열거된 문구들은 마지막에 알바생 복지를 위한 광고라는 것을 드러내는 반전을 위해 마련된 징검다리다. 뒤에 나오는 가치를 강조하는 이런 전개 방식에서는 앞에 배치된 가치들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처럼 다뤄지게 된다. 특정 분야에서 이윤 추구 활동을 하는 기업이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광고를 잘 만들지 않는 것은, 경쟁사를 비하하는 광고가 금기시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 때문이다. 감히 어떤 기업이 정부를 향해 정의, 평화, 교육, 보육, 양성평등, 노인복지 등을 중요하게 다뤄 달라는 광고를 할 수 있겠나?

그래서 알바천국 광고는 “근데 알바가 좋은 나라도 만들어 주실 거죠?”라고 공손하고도 애교 있게 말한다. 혹시라도 자기네 이해관계만 먼저 들어달라고 요구하는 광고로 오해받거나 미움 받을까봐 상당히 조심하는 게 드러난다. 광고 카피가 이렇게 소극적이고 조심스러워도 될까 싶다.

알바천국의 평소 광고와는 다른 태도다. 알바천국과 알바몬 등 아르바이트 중개 서비스 업체들의 주요 고객인 알바생들은 사회적 약자인 청년 저소득층과 고스란히 겹쳐진다. 따라서 관련 기업이 그들의 대변자 역할을 하는 것은 사업에 유리하다. 자연스럽게 광고를 통해서도 진보 진영이 중시하는 가치를 옹호하게 된다. 최저임금 규정을 어기는 일부 고용주들에게 “이런 시급”이라며 과격한 말투로 자극해 논란이 일었던 알바몬 광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알바천국 역시 알바생들이 당당하게 자기 권리를 챙길 것을 강조하는 광고를 만들어왔다. 최근엔 주휴수당 문제 등 알바생들의 복지와 직결된 현안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현해오고 있었다.

그 결과 아르바이트 중계 서비스 시장에서 알바몬과 알바천국은 지난해 각각 382억 원, 347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1, 2위를 기록했다. 알바천국의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 대비 22.5%나 증가한 액수다. 영업이익률은 22.1%에 달한다. 이쯤 되면 알바천국이 광고에서 강한 주장을 펼치지 않을 이유가 딱히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광고는 왜 소극적인 자세를 보일까?

▲알바천국의 예전 광고. 주휴수당 관련 사안을 범죄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강하게 묘사했다. (사진 = 알바천국)


진보 진영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이나 심상정 대표가 아니었더라도, 이번 대선에서 청년 세대의 일자리 복지 문제는 모든 후보가 중요하게 다뤘다. 최저시급 1만원 인상 공약을 내걸지 않은 후보가 없을 정도였다. 알바천국이 대선 투표일에 맞춰 새 대통령에게 알바생 복지 문제에 대해 당부하는 콘셉트의 광고를 만들기로 결정했을 때, 굳이 날을 세우고 맞설 대상은 딱히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날이 무디고 소극적인 광고는 메시지가 약하고 흥미가 떨어지기 십상이다.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 하는 진지한 문구의 나열도 브랜드 이미지와 달리 무겁고 지루하게 받아들여질 소지가 다분하다. 이런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서는 다른 재료를 잘 섞어 넣어야 한다. 이번 광고에서는 패러디가 큰 역할을 했다. 적절한 명장면들을 잘 찾아 활용한 덕에 정치적인 발언의 무게감은 덜었고, 공감대와 시의성, 그리고 애교를 고루 갖춘 매력적인 광고가 됐다.

앞서 나열한 각 키워드는 기존의 유명 작품이나 매체의 명장면들 가운데 해당 키워드와 밀접하게 연관된 장면을 통해 보다 생생하게 표현됐다. '평화로운 나라'에는 군인이 주인공인 한류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명장면이, '공부하기 좋은 나라'에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유명한 엔딩 장면이 재현됐다. 뒷부분에선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도 인용됐다.

유명 작품들의 특정 장면들을 가져와 재현한 방식은 엄밀히 패러디라고 보기 어렵다. 패러디는 원본의 이미지를 빌어 오되 새로운 의도를 담아 창조적 변형을 더하는 작업인데, 이 광고의 재현 장면들은 원본과 최대한 흡사하게 복제하는 것이 더 중요한 목표였던 것으로 보인다. 비틀즈의 '애비 로드' 앨범 자켓을 패러디한 '노후 걱정이 없는 나라' 부분에서는 후경에 폭스바겐의 노란색 '비틀'이 한쪽 바퀴를 인도에 걸친 채로 주차되어 있는 것까지 고스란히 따라했다. 메인 모델인 세정이 '포레스트 검프'의 한 장면처럼 배경에 등장한다는 점 외에는 구도, 캐릭터, 분위기 등이 원본과 달라진 점이 거의 없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 키팅 선생(로빈 윌리엄스, 가운데 앉은 사람)이 교단이 아닌 학생들 사이로 들어와 수업하고 있다. (사진 = 영화 화면 캡처)


인용의 맥락 안에 뚜렷한 메시지가

한 영화 칼럼니스트는 이 광고가 이처럼 여러 원본을 가져다가 패러디하는 대신 똑같이 인용한 데 뚜렷한 메시지가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얼핏 보면 문구에 어울리는 빤하고 대표적인 장면을 선택한 것 같은데, 원본 장면이 원작에서 어떤 맥락에 놓여있었나를 고려해 보면 태도에 일관성이 있다”고 평했다.

예컨대 '죽은 시인의 사회'가 그렇다. 그는 “이 영화를 다소 비극적이지만 아름다운 성장 영화로 기억하거나, 학창 시절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라며 “광고에 쓰인 영화의 엔딩 장면도 교사와 학생의 의리에 관한 것으로 오독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영화가 “기성 교육의 엘리트주의와 권위주의, 획일화 등에 거세게 반발하는 급진적인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키팅 선생(로빈 윌리엄스)은 권위주의적인 교과서를 찢어버리게 했고, 자세를 낮춰 학생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으며, 자율과 검열 없는 학생의 창의력을 응원했다. 그에게 동조했던 학생은 보수적인 기성세대(아버지)와 갈등을 빚었고, 강압에 의해 소통이 단절되자 끝내 좌절하고, 자살했다. 학교는 이 비극을 낳은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서는 외면한 채 키팅에게만 책임을 전가하고, 퇴출을 강행한다. 또한, 키팅이 문제 삼은 낡고 권위적인 교과서를 복원시켜서 학생들에게 강요하려 든다. 광고에 담긴 엔딩 장면은 이런 기성 교육에 반발한 학생들이 저항하기 시작하는 장면이다.

‘태양의 후예’에서는 유시진 대위(송중기 분)가 의사인 강모연(송혜교 분)의 신발 끈을 매 주는 6회의 마지막 장면이 선택됐다. 위의 영화 칼럼니스트는 "이 드라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능한 군인이 주인공인 드라마인데, 광고는 왜 굳이 이렇게 로맨틱한 장면을 '평화'와 연결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사실 이 장면은 두 연인이 결별 위기의 긴장 상태에서 재회한 껄끄러운 순간이었다. 배경은 지진으로 아수라장이 된 재난 현장이다. 평화와는 거리가 먼 상황이지만 이 순간 두 사람의 구도는 평화롭게 보인다.

그는 "이 장면에서 드러난 건 적어도 한반도가 아닌 인류 차원의 평화"라며 "고가의 최첨단 무기도 없고, 위협과 견제가 아니라 헌신과 연대로 지켜내는 평화다. 희생자들을 돕기 위해 신발 끈이 풀린 줄도 모르고 뛰어다니는 강모연 같은 사람들이 만드는 평화"라고 분석했다. 또한, "상사로부터 징계를 받는 순간에도 꼿꼿함을 잃지 않는 유시진이지만 헌신적인 의사 강모연 앞에서는 기꺼이 무릎을 꿇는다"라며, "군은 앞에 나서는 대신 민간 차원의 평화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로 그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로버트 켈리 부산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관련된 BBC뉴스와의 생방송 화상 인터뷰 도중 난입한 자녀들로 인해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한 바이럴 동영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사진 = BBC 뉴스 화면 캡처)



대통령 탄핵 관련 레퍼런스

한 홍보 전문가는 알바천국이 인용한 레퍼런스가 드라마와 영화 등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에서 인용된 장면은 부산대학교 정치학과의 로버트 켈리 교수가 BBC 뉴스와 화상 인터뷰를 하던 도중 자녀들이 방안에 난입하는 모습이 생중계된 장면이었다. '여성이 당당한 나라'에서는 이정미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헤어 롤을 머리에 만 채로 출근하는 모습이 보도된 장면을 인용했다.

이 전문가는 "모바일 미디어와 SNS가 대세인 요즘에는 사회 현상이 뉴스가 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뉴스가 수용자들에 의해 다시 퍼져 나가며 새로운 사회 현상과 새로운 뉴스가 된다"며 이 두 장면이 이런 바이럴(viral) 현상의 대표적인 예이자 가장 최근의 예라고 설명했다. 그는 "알바천국 광고는 트렌드와 시의성까지 제대로 읽고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공교롭게도 이 두 장면이 보도되고 화제가 된 날짜는 2017년 3월 10일이었다. 생방송 중 자녀들에게 기습당한 켈리 교수가 당시 BBC와 가진 화상 인터뷰는 이날 헌재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인용한 사안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전 재판관은 이날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파면을 결정한 탄핵 심판 판결문을 직접 발표했다. 두 인물의 역사적인 운명과 더불어, 이 전 재판관이 이동 시간을 이용해 간단하게 머리를 손수 만진다는 사실마저 박 전 대통령의 올림머리 논란과 대비된다는 점 때문에 더욱 관심을 받았던 장면이다.

이제는 두 장면 모두 한때 온라인에서 화제였던 영상으로만 회자되고 있지만, 사실은 정권이 바뀐 결정적인 사건인 최순실 국정농단과 박 전 대통령 탄핵과 별도로 존재할 수 없는 뉴스였다. 그런 점에서, 이 두 장면이 광고에 인용된 것이 더욱 인상적이다. 시청자들은 광고에 대한 댓글로 "실제 뉴스 화면인 줄 알고 혼란을 겪었다", "시의성을 잘 녹여내서 새로운 나라에 대해 말하는 광고의 진정성이 느껴진다"는 등 이 장면들을 인용한 것에 호의적인 평가를 내렸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후보 기호를 연상시키는 '엄지 척'은 지난 해 그룹 미스에이 멤버인 수지가 찍은 주휴수당 관련 알바천국 광고에서 이미 칭찬의 의미로 강조되었던 포즈다.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文대통령 의식한 엄지 척?

광고 말미에 “알바 선진국으로 갑시다” 장면에 인용된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 명장면 인용도 놀랄 만큼 과감한 장면이다. 원작 영화에서 불멸의 액체 금속 로봇인 T-1000을 겨우 물리친 터미네이터(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자기 자신이 미래 기계 반란의 마지막 가능성으로 남아있다며 스스로 용광로에 들어간다. 온 몸이 쇳물에 잠기고 마지막 남은 오른손도 가라앉기 직전, 그는 슬퍼하는 어린 존 코너(에드워드 펄롱)를 위로하기 위해 둘만의 포즈인 '엄지 척'을 취해 보인다. 

그런데 이 엄지 척 포즈가 하필 이날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기호였던 1번을 상징하는 손 모양과 동일하다는 것이 관심을 모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사전 투표 인증샷에는 손가락 모양도 불허했던 것을 고려하면 이 장면이 시청자에게 얼마나 노골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트위터 이용자 @N**1988은 "문재인 대통령께 헌정하는 광고구만"이라고 반응했고, @*angach**는 "짜고 치는 고스톱. 문재인 대통령 될 줄 알고 있었나"라고 의심하기도 했다. 혹시라도 이날 다른 사람이 당선되었다면 이 엄지 척 장면의 어떤 운명이 처했을지 궁금해 하는 시청자도 있었다. 

하지만 엄지 척이 노골적 지지 행위가 아니냐는 의혹에서 벗어날 알리바이가 알바천국에게는 있었는지도 모른다. 알바천국은 지난해 11월, 알바생의 주휴수당을 챙겨주는 고용주를 칭찬하는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다. 이 캠페인 관련 TV 광고에서 메인 모델인 수지는 칭찬의 의미로 "최고"라는 말과 함께 엄지 척 포즈를 취했다. 심지어 이 포즈를 세 번이나 보여주며 강조했다. 대선 전부터 엄지 척을 자기네 광고에 사용해 왔다고 주장할 근거가 충분한 것이다.

또한, 알바천국은 이번 대선을 계기로 알바 문화, 복지와 관련해 건의할 의견을 모아 새 대통령에게 전달하겠다는 모바일 캠페인, '아무말드림' 이벤트를 론칭하면서, 이와 관련된 '알바 선진국' 광고를 내보낸 것이다. 즉, 문 대통령을 구체적으로 대상으로 삼아 대화를 건네는 콘셉트인 이 광고에서 엄지 척이 문제 될 이유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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