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간담회가 열리기 약 30분 전. 휠체어를 탄 백영수 화백과 그런 남편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김명애 여사가 함께 등장했다. 사람들 말을 잘 듣지 못하고, 길게 말하는 것을 힘들어 한다는 백 화백을 위해 김 여사가 동행한 것. 그런데 막상 백 화백은 자신에게 말할 기회가 주어지면 작업에 대한 끊임없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오히려 옆에서 김 여사가 “하나하나 다 말하자면 시간이 없다”고 남편을 만류했을 정도. 비록 세월의 흐름 앞에 신체는 나이가 들고 머리도 희끗희끗해졌지만, 작업에 대한 열정만큼은 푸르른 청춘(靑春) 시절 그대로였다.
아트사이드 갤러리가 백 화백의 개인전을 10월 23일까지 연다. 이번 전시는 2012년 광주시립미술관 이후로 4년 만에 열리는 백 화백의 개인전이다. 한국 추상회화 1세대인 백 화백의 최근작과 대표 작품 40여 점을 소개한다.
백 화백은 1950년대부터 김환기, 이중섭, 유영국, 이규상, 장욱진 등과 함께 순수 조형이념을 표방한 추상 계열 작가들의 모임인 신사실파(新寫實派) 동인으로 활동했다. 추상이라도 모든 형태와 내용은 사실이며,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사실을 추구하자는 의도에서 비롯된 신사실파. 백 화백은 현재 이 모임의 유일한 생존 작가다. 한국 추상미술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데 그 맥락을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77년 이후에는 35년 동안 프랑스 파리에 체류하며 프랑스 및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100여 차례의 전시에 참여했다. 김 여사는 “사람들이 프랑스에서 힘들지 않았냐고 많이들 묻는데, 우리는 10평 남짓의 작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정말 행복했다. 집이 좁아 우리 부부는 방도 없이 거실에 마련된 작은 침대에서 자고, 남편은 거실 바닥에 앉아 그림을 그리곤 했고, 아이들은 그걸 지켜봤다. 그렇게 부대끼며 살면서도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려 남편도 행복해 했다”고 회상했다.
이 시기 백 화백의 대표작인 ‘모자상(母子像)’ 시리즈가 등장했다. 어머니와 그 어머니에게 업혀 있는 갓난아이가 등장한다. 화면에는 화려한 배경도 없이 이 둘만 존재하지만 이들은 평온한 표정이고 또 행복해 보인다. 얼굴은 가로로 기울여져 있는데 “똑바로 그려져 있으면 이상하잖아”라고 오히려 백 화백은 반문했단다. 김 여사는 “이 사람이 그렇다. 그림을 그릴 때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그리고 그 세계의 중심에 어머니가 있었다”고 말했다.
50년 그린 모자상(母子像)에 각별한 애정
“엄마는 사랑입니다” 묵은 한 마디가 묵직
백 화백은 유독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남다르다는 게 김 여사의 설명이다. 백 화백이 고작 두 살일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김 여사는 “남편이 어머니와 일본에 가서 고된 생활을 했다. 그래서 모성에 대한 동경이 있는 것 같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평생 모자상을 그려온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이에 담담히 자리를 지키던 백 화백은 모자상 옆에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엄마는 사랑입니다. 아이와 엄마는 떼어놓으려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사랑합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사랑합니다.”
백 화백은 이 말을 연신 되풀이했다. 그 조용히 되풀이 되는 몇 마디가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백 화백이 작업 생활의 거의 50년 이상을 모자상에 천착한 이유는 결국 그리움과 사랑이었던 것. 모자상 속의 어린 아이는 백 화백 그 자신이었다.
김 여사는 “이 모자상은 남편이 또한 딸을 낳고 아버지가 되면서 조금의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아마 자신이 느낀 모성에 대한 그리움만큼 자신의 아이에게 사랑을 듬뿍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 마음을 듬뿍 담아 그린 모자상은 과거부터 현 시대까지 그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도 모자상이 전시돼 그 감동을 전한다.
또 이번 전시가 특별한 점은 백 화백의 대표 작품뿐 아니라 2015~2016년 작업한 신작 또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백 화백은 현재 몸이 불편해 유화 작업은 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래도 아내가 여러 색깔 펜을 주면 아이처럼 좋아하며 그림을 그린단다. 또한 최소한의 사항만 손주 또는 아내에게 부탁하지, 절대로 남의 도움을 받지 않는단다. 김 여사는 “남편은 제자 없이 혼자서 작업을 한다. 언제 한 번은 100호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지울 때 손주의 도움을 받고, 끝 터치는 꼭 본인이 했다. 남을 시켜서 작업을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신작들은 아내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드로잉과 콜라주 작업 위주로 이뤄졌다. 김 여사는 “이전엔 남편이 작은 그림이라도 스케치를 한 뒤 그림을 그렸는데, 이젠 몸이 아파 유화 작업은 하기 힘들다. 그래도 전시가 잡히니 좋아하면서 새로운 작업을 하고 싶어하더라”며 남편의 열정을 지지했다.
새롭게 내놓은 콜라주 작업
이젠 쉴 때라고? 작업은 계속된다
‘말’(2016)은 프랑스에 있는 딸이 보내온 소포와 내용물로 제작한 콜라주 작업이다. 가족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긴 이 작업에서는 가족에 대한 백 화백의 애틋한 사랑이 느껴진다. 그런가 하면 얇은 나무 막대를 잘라 서 있는 남자상을 만들기도 했고, 검정색 종이에 흰 펜으로 게 한 마리를 그려놓기도 했다. 이 신작들이 전시장 1층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새로운 백 화백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리다.
백 화백은 지난해에 사인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사인 요청을 받았는데, 자신의 이름을 한 글자도 적지 못해 백 화백 자신도, 주변 사람들도 놀랐다고 한다. 그리고 평소 백 화백의 일상은 거의 누워서 자는 시간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상황이 이러면 한국 미술계의 거장 작가로 자리한 현재, 이젠 그 명성에 기대어 쉴 수도 있을 법하다. 그런데 백 화백은 일어나면 펜을 달라고 아내를 부른단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떨면서 선 하나를 긋기 시작한다.
김 여사는 “남편이 작업에 대한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고 하더라. 이번 전시가 잡혔을 때도 과거 통의동이 자신이 서울에 처음 와서 하숙한 곳이라며, 또 전시도 했다고 이중섭, 김환기 선생의 이야기를 많이 꺼냈다. 도시락을 먹으며 전시를 했다고도 신나게 이야기했다. 남편이 그렇다. 작가는 전시를 열면 당연히 기분 좋은 거라며 펜을 찾는다”고 말했다. 미소 짓던 백 화백은 “나는 더 열심히 해야 해요”라고 입을 열었다.
“화가가 전시하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나는 지금 기분이 매우 좋아요. 나를 잊지 않고 찾아줘서 고맙고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할 거예요.”
백수(白壽)를 앞둔 노장 작가의 나이만 보면 ‘늙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작업을 앞둔 그의 눈빛은 그 어떤 청년보다도 젊고 아직도 반짝인다. 전시는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10월 23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