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국적항공사 대한항공이 최근 델타항공과의 조인트벤처(Joint Venture, JV)를 성사시켜 새로운 도약의 기반을 마련했다. 저비용항공사(LCC)의 성장과 중국의 사드 보복, 유가 인상 등 갖은 악재 속에서도 꾸준한 수익을 확보해온 대한항공이라 델타항공과의 협력이 강화될 경우 수익성이 한층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미국 금리 인상과 보호무역 강화 등 대외적 환경 악화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계열사 경영 복귀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되는 박창진 전 사무장과의 소송전 등은 리스크 요인으로 지목된다.
49년 역사의 국내 1위 항공사
태극 로고를 달고 세계의 하늘을 누비는 대한항공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대표 항공사다. 2017년 말 기준 여객기 133대, 화물기 28대 등 161대의 항공기가 국내외 42개국, 110개 도시를 정기적으로 운항하고 있으며, 항공사 동맹체인 ‘스카이팀’(SkyTeam) 창립멤버로 막강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대한항공의 기원은 1962년 6월 설립된 국영 대한항공공사다. 항공 여행객이 많지 않던 시대적 한계로 적자가 누적되자 박정희 정부는 당시 인천에서 물류기업 한진상사를 이끌던 조중훈 사장에게 매각, 1969년 3월 대한항공으로 이름을 바꾸고 민영 항공사로 새출발했다. 대한항공은 이때를 창립연도로 간주해 올해는 창립 49주년이다.
70년대 들어 한국경제가 급성장하고 여행객이 늘면서 대한항공도 빠르게 성장했고, 이를 기반으로 육해공을 아우르는 종합물류그룹 한진그룹이 만들어졌다. 1990년대 냉전이 종식되며 대한항공의 취항지가 급증했고, 2000년 이후에는 인천국제공항 개항과 항공동맹 스카이팀 창립 등에 힘입어 내실을 키웠다.
대한항공의 사업부문은 크게 네 부문으로 각기 항공운송 사업(여객‧화물 사업), 항공우주 사업, 기내식‧기내판매 사업, 리무진 사업 등이다. 각 부문의 매출 비중은 항공운송 91.72%, 항공우주 6.28%, 기내식 0.83%, 기타 0.6%, 호텔리무진 0.57% 등으로 항공운송사업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2017년 기준으로 국내 항공 시장에서 국제 여객 24.65%, 국내 여객 24.59%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으며, 항공화물 부문에서는 운송 실적(FTK) 기준 글로벌 6위다.
4월 5일 장마감 기준 시가총액은 3조 3717억 원으로 코스피 81위이며, 주요 주주는 지주사인 한진칼 외 9인 33.35%, 국민연금 12.82%다. 외국인 지분율은 16.43%다.
사드‧LCC 악재 뚫고 매출 11조 달성
지난해 사드 이슈와 한반도 전쟁위기 고조 등으로 한국을 찾는 방문객이 줄면서 대한항공 중국 노선과 미주 노선의 매출은 2016년보다 각각 17.0%, 4.5% 줄었다. 대신 내국인의 출국이 늘고 유럽 노선과 동남아 노선 매출이 각기 14.2%, 9.6% 증가하면서 전체 여객 매출은 0.6% 감소에 그쳤다. 여기에 고단가 화물을 중심으로 항공화물 물동량이 전년보다 16.2% 늘면서 총 매출이 전년보다 2.6% 성장했다.
그 결과 2017년 대한항공은 매출 11조 8028억 원, 영업이익 9562억 원, 순이익 9079억 원의 호실적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에 제시한 경영목표(8400억 원)를 13.8% 추월했으며, 순이익은 사상 최대였다. 이에 대한항공은 7년 만에 배당을 결정했다. 배당금은 보통주 1주당 250원, 우선주 1주당 300원이었다.
사드 한파와 LCC 급성장이라는 악재 속에서 일궈낸 높은 성과에 시장도 반응을 보였다. 지난해 6~7월 최고조를 기록하다 10월 초 3만 원 이하로 급락했던 주가가 4분기 실적이 발표되기 직전인 1월 29일 3만 9500원의 최고가를 기록했다.
물론 이때 주가에는 대한항공이 추진 중이던 델타항공과의 조인트벤처(JV)에 대한 기대감도 반영돼 있었다. 이후 2개월 간 주가는 내림세를 보였지만 3월 29일 정부가 ‘대한항공-델타항공 JV’ 설립을 최종 인가하면서 다시 반등,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대한항공-델타항공 JV에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는 뭘까?
항공사 간 JV란 두 회사가 한 회사처럼 공동으로 운임·스케줄 등 영업활동을 수행하며 수익·비용을 공유하는 경영 모델을 지칭한다. 좌석 일부와 탑승 수속 카운터, 마일리지 등을 공유하는 공동운항(코드쉐어)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항공사 간 가장 높은 수준의 협력 관계다.
두 회사가 서로 강점을 가진 노선을 자사의 노선처럼 운영하면서 수익을 공유하므로 항공사는 다양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소비자는 더 많은 노선을 선택할 수 있어 ‘윈-윈’이다. 양사의 우수 회원들은 마일리지의 상호 인정 범위가 확대되므로 더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된다.
브랜드 가치 1등 델타항공과 조인트벤처
업계에 따르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 2000년부터 무려 18년 간이나 델타항공과의 JV를 추진해왔다. 그렇다면 왜 델타항공일까?
델타항공은 아메리카항공, 유나이티드항공과 함께 미국 3대 대형항공사 중 하나로 보유 기체 수와 취항지 수, 브랜드 가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1위다. 보유 기체 수가 무려 810기에 달하며, 전세계 88개국 247개 도시 334개 공항에 취항한다.
이 회사는 지난 2000년 6월 대한항공, 아에로멕시코, 에어프랑스 등과 함께 항공동맹 스카이팀을 창립했다. 대한항공과는 일찍부터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온 혈맹인 셈이다. 스카이팀은 스타얼라이언스, 원월드와 함께 세계 3대 항공동맹으로 꼽히며, 현재는 20개 항공사가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이번에 국토부 인가를 받은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의 JV는 태평양 노선 즉 대한항공이 보유한 아시아 77개 노선과 델타항공이 보유한 미주 271개 노선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게 핵심이다.
이를 위해 양사는 지난해 3월 JV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고, 6월 정식 협정에 서명한 후 7월 한미 항공 당국에 JV 인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미국 교통부는 지난해 11월 대한항공-델타 JV를 승인했지만, 국내에서는 주무부처인 국토부가 공정거래위원회의 경쟁 제한성 검토를 거쳐야 해서 결정이 늦어지다 마침내 지난달 27일 국토교통부가 양사가 신청한 태평양 노선 JV를 조건부 인가했다.
우리 정부가 국내 항공사의 JV를 인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토부는 인천-미주 노선 스케줄이 다양해지면 동북아 공항의 환승 수요를 인천공항으로 흡수할 수 있으므로 인천공항의 허브화 전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르면 올해 상반기 중에 대한항공-델타 JV가 공식 출범할 전망이다.
대한항공 측은 이번 JV 인가에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최근 인천공항 2터미널 개항으로 양사 고객에게 일원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환경이 조성됐고, 새로운 환승 수요 등 다양한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며 “내년 창립 50주년을 앞두고 JV가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목표, 영업이익 1조 원 돌파
지난달 22일 대한항공은 2018년 영업실적을 매출액 12조 4100억 원, 영업이익 1조 700억 원으로 전망한다고 공시했다. 지난해 어려운 대내외 여건 속에서도 9562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1조 원 돌파는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다.
올해 1~2월 출국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2% 높아 성장세가 뚜렷하며, 지난해 고조됐던 한반도 긴장상황도 최근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남북관계 해빙 분위기로 개선될 전망이다. 1~2월 미주‧유럽 지역 입국자가 각기 14.5%, 10.3% 상승했고, 항공화물도 전년 대비 2.3% 증가세를 유지하는 등 대외적 여건은 우호적이다. 여기에 중국 노선 실적이 회복되고 델타항공과의 JV에 따른 실적 개선 효과도 뒤따를 것으로 기대돼 낙관적 요인이 가득하다.
하지만 리스크 요인도 여전히 존재한다.
첫 번째는 최근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는 유가와 환율이다. 지난해 대한항공의 항공유 사용량은 약 3억 3000만 배럴로 항공유가가 1달러 상승할 경우 약 330억 원(환율 1000원/달러 가정)의 유류비 부담이 증가한다. 2017년에는 평균 항공유가가 전년 대비 11.7달러 상승해 유류비가 약 4000억 원 증가했다. 물론 글로벌 유가 급등 가능성이 낮고 신규 항공기 투자로 연료효율성도 개선된 상황이라 유류비 부담이 심각한 문제가 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다만 환율 상승은 유류비, 리스료, 금융리스부채 등 외화채무 결제 비중이 높은 항공사에게 커다란 부담 요인이다. 2017년에는 전년 대비 연평균 원달러환율이 41.0원 하락하여 유류비와 리스료 결제시 약 700억 원의 비용절감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지만, 최근 미국의 금리 인상과 무역전쟁 우려로 환율변동성이 확대되고 있어 원-달러 환율이 상승할 경우 영업실적에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
2014년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지난 29일 한진그룹 계열사 칼호텔네트워크의 사장으로 복귀한 것도 리스크 요인으로 지목된다. 때마침 대한항공과 당시 사건으로 소송전을 전개하고 있는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머리 양성종양 사진을 공개하며 양측의 대립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 4일 박창진 전 사무장이 조현아 전 부사장과 대한항공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첫 변론기일이 열리며 본격적인 소송전의 막이 올랐다. 자칫 4년 전처럼 대한항공에 대한 여론이 악화될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분석가들 “JV 긍정적” vs “1분기 실적 저조”
증권 분석가들은 대부분 델타항공과의 JV를 장기적 성장동력 마련으로 간주하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다만 1분기 영업이익 하락은 우려했다.
방민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1% 상승한 3조 700억 원에 달하겠지만 영업이익은 4.7% 하락한 1825억 원 수준일 것”으로 예측했지만 “델타와의 JV가 북미 노선뿐 아니라 아시아 노선 전반에 트래픽 유인 효과를 내고, 델타 기업 고객 공유를 통해 대한항공의 프리미엄 좌석 탑승률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지난해 타격이 컸던 중국과 미주 노선이 점진적으로 회복돼 여객 성장이 기대된다”며 투자의견 ‘매수’와 목표주가 4만 6000원을 유지했다.
박광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도 “태평양 노선에서 성공적인 JV로 평가되는 ANA(일본)-유나이티드(미국) JV의 경우 2010년 2804억 엔에서 2015년 5485억 엔으로 연평균 14.4%나 늘었다”며 “델타항공과의 JV 효과는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낙관했다. 박 연구원은 “1분기 실적 하락 우려가 상존하지만 높은 밸류에이션 매력도와 중장기 성장동력 확보를 눈여겨 봐야 한다”며 투자의견 ‘매수’와 목표주가 4만 5000원을 유지했다.
류제현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대한항공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1865억 원으로 시장 전망치보다 2.6% 적을 것”이라며 “유가 상승과 일회성 비용, 호텔손실 등으로 이익 증가가 쉽지 않아 1분기 실적 부진과 단가 하향 전망을 고려해 올해와 내년 순이익 전망치를 각각 9.2%, 4.9% 하향 조정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델타항공과 JV가 상반기에 출범하면 실적 개선과 주가 반등 모멘텀이 될 것”이라며 ‘매수’ 투자의견을 유지하고, 목표주가만 4만 7000원에서 4만 2000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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