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기업: G마켓] "광고주가 판단미스해도 김희철-설현은 하드캐리"
▲아이돌 톱스타이자 광고계 톱스타인 김희철과 설현을 동시에 등장시킨 G마켓 광고.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아는 형님’으로 주가 고공비행 중인 김희철과 최근 몇 년간 여자 광고모델 선호도 상위권에서 좀처럼 내려올 생각을 않는 설현. 이 둘은 케이팝이나 아이돌 세계뿐 아니라 당대 광고계 톱스타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톱스타가 최근 G마켓의 여름 광고 캠페인에 동시 캐스팅됐다.
몇 편의 시리즈 광고에서 이 두 사람은 G마켓의 다양한 여름 상품을 일일이 열거하다시피 하는, 다소 조잡한 콘셉트의 랩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둘 다 대한민국의 대표 보이그룹-걸그룹의 간판 멤버지만 이 광고에서 보여주는 동작은 단순하고 코믹한 안무로, ‘막춤’이라고 부를만하다. 일부러 엉성하고 촌스러운 동작을 선보이고, 일부러 엉성하고 조잡한 직설적 랩 음악을 깔았다. 특징은 두 사람이 내내 무표정으로 일관한다는 점이다.
배경음악에서는 “G마켓에 와라”와 “G마켓이 하드캐리”라는 구절을 반복한다. 여기서 ‘하드캐리’라는 말은 온라인 게임에서 나온 용어다. 팀 대 팀으로 전투를 벌이는 장르의 인기 게임에서, 모든 팀원의 고른 활약이 아니라 어떤 특정 플레이어의 뛰어난 활약으로 승리할 경우, 그가 승리를 ‘견인했다’는 의미에서 캐리(carry)라는 표현을 쓴다. 특히 그 활약이 독보적이거나, 전투가 치열한 상황이었을 경우에는 힘들게 견인했다는 의미로 하드 캐리(hard carry)했다고 표현한다. 즉, 올 여름 무더위를 모두 견디기 힘들어 하지만, G마켓이 다양한 상품으로 시원함을 이끌어내겠다는 의미다.
시청자들은 광고에 대해 “배경음악에 중독성이 있다”, “춤이 유쾌하고 재미있다”는 긍정적인 반응과 함께, “뭘 전달하려는지 모르겠는 콘셉트”, “임팩트가 없다”는 부정적인 반응도 골고루 보여주고 있다.
▲무표정 막춤 콘셉트를 내세운 G마켓 광고.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무표정 막춤 콘셉트? 새롭지 않아"
한 광고 감독은 이 광고를 두고 “성공한 광고”라면서도 “그러나 완성도만 보면 엄청난 실패작”이라고 모순된 평가를 내렸다. 이 감독은 이번 G마켓 광고를 ‘무표정 막춤’을 담은 코믹 광고라고 분류하면서, 새로운 콘셉트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상품의 장점을 나열하는 가사의 음악에 맞춰 춤추는 광고는 많다. 거기에 코믹한 분위기로 호감을 높이고자 막춤을 도입한 광고도 많다. 전형적인 예로, 대부업체 ‘원캐싱’ 광고 시리즈를 들 수 있다. 이 업체는 터키 민요 ‘우스크다라’를 변형한 단순하고 익숙한 멜로디에 “1588-82XX 대출은 원캐싱, 원캐싱”만 반복하는 CM송에 맞춰 무명의 모델들이 코믹하고 단순한 막춤을 추는 광고를 수 년 동안 일관되게 반복해 왔다.
이 감독은 광고에서 모델이 무표정을 보이는 이유는 거의 대부분 코믹한 상황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표정은 일상에서 접할 경우가 별로 없는 생소한 상황이다. 그래서 시청자를 본능적으로 당황시키는 장치다. 따라서 광고에서 모델의 무표정 앞뒤에 코믹한 상황이 배치되면 웃음과 함께 당황했던 기분까지 함께 해소되어 반전 효과가 더 커진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표정도 상황에 따라 여러 뉘앙스를 띄기 때문에, 콘셉트에 따라 적절히 무표정을 연출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의 무표정이 있고, 닥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모르는 무표정이 있다. 또한 몰입이 지나쳐서 나오는 무표정, 일부러 상대방에게 냉정함을 전달하기 위한 무표정 등이 다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잘못된 무표정은 맥락도 없이 ‘무표정해 보이기 위한 무표정’"이라고 이 감독은 못 박으며, "이번 G마켓 광고 시리즈에 나온 설현의 무표정이 잘못된 무표정 연출의 가장 전형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2007년 롯데제과의 '옥메와까' 광고는 대표적인 엽기 코믹 광고로 꼽힌다.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옥메와까' 광고를 오마주 한 2015년 세븐일레븐 '칠찹깐직' 광고.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무표정과 막춤에 무성의한 CM송까지 더해져 시청자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전설적인 광고가 있다. 2007년 롯데제과의 일명 ‘옥메와까’ 광고다. 옥메와까는 롯데제과의 빙과류 제품 중 옥동자, 메가톤바, 와일드바디, 까마쿤의 첫글자를 딴 약칭이다. 당시 무명의 연예인 지망생이던 서우는 안무가 정해지지 않은 채 자유롭게 춤을 추면서 직접 CM송까지 불러야 했고, 게다가 섹시해보이기 위한 무표정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어이없게도 서우의 바들바들 떨리는 노래가 고스란히 CM송으로 사용되었고, 춤 역시 잘 추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배경 인물들이 추는 춤도 막춤이다. “옥메와까, 옥메와까”를 반복하는 후렴구는 원시 부족이 사냥에 나설 때 외치는 구호나 주문처럼 들린다. 이 기묘한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는 ‘아스트랄하다’라는 낯선 수식어와 잘 어울리는, 극도로 엽기적인 광고 한 편이 됐다.
이 ‘옥메와까’ 광고는 서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촉발시키며 성공했고, 지금까지도 한국의 코믹 광고를 논하는 경우 언제나 빠짐없이 언급되는 전설로 평가된다. 2015년에는 걸스데이 혜리가 출연한 세븐일레븐 편의점 도시락 광고(일명 ‘칠찹깐직’ 광고)를 통해 오마주 되기도 했다.
▲예뻐서 웃기지 않는다는 것이 설현의 약점이라는 지적도 있다.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제대로 웃기려면 최선 다 했어야
다시 G마켓 광고로 돌아와서, 이 감독은 G마켓 광고가 완성도에서 실패한 이유를 무표정에서 웃기려는 의도가 뻔하게 드러나고, 두 사람의 안무가 맞지 않는 점을 들었다. 그나마 김희철은 무표정한 얼굴표정으로는 노골적으로 무관심을 드러내면서도 몸으로는 열심히 춤을 춰, 모순에서 나오는 코믹함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잘 드러났다. 반면 설현의 약간 벌린 입 모양은 예쁘고 섹시함을 차마 포기하지 못한 탓에 나온 도도함이지, 무표정이 아니라고 이 감독은 지적했다. 서로 다른 콘셉트로 연기하는 두 모델이 한 화면에 잡히면서 이도 저도 아닌 콘셉트가 되고말았다는 것이 이 감독의 주장이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안무가 충분히 숙지되지 않아 동작에 절도가 없고, 통일감이 떨어져 더욱 산만해보인다는 지적이 덧붙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광고를 성공적이라고 평가한 이유를 묻자, 이 감독은 “오로지 김희철이라는 톱스타의 힘”이라고 정리했다. jtbc ‘아는 형님’에서 자유롭고 막나가는 '돌아이' 콘셉트로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면서 방송가를 주름잡는 김희철이 캐스팅된 것만으로도 시청자는 이미 웃을 준비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김희철은 이 광고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고, 미완성 상태에서라도 광고 콘셉트의 엽기성과 유머를 전달한다는 평가다. 옆에서 설현이 어설픈 무표정과 어설픈 막춤으로 광고의 완성도를 갉아먹더라도, 그것마저 김희철의 ‘돌아이’ 아우라의 일부처럼 받아들여진다는 설명이다.
그럼 이 광고에서 설현의 역할은 마이너스뿐이었을까? 그녀의 외모에서 풍기는 예쁨과 단정함은 여전히 시청자들에게 긍정적 반응을 충분히 이끌어낸다는 사실은 이 광고에 달린 댓글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어떤 광고가 어떤 콘셉트를 의도했든, 설현이 등장하면 그 광고의 장르는 ‘설현 장르’가 된다고나 할까.
무보정 뒤태와 미소를 담은 SKT 등신대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2015년 여름 이후로 설현은 한국 광고의 대세로 등극했다. 당시 새로 캐스팅된 광고 때문에 가진 한 미팅 자리에서, 기획안에 다른 설명 없이 그 SKT 등신대 사진만 달랑 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현 스스로 토크쇼에서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설현은 광고의 완성도를 혼자서 하드캐리 한 경험이 이미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번 G마켓 하드캐리 광고가 김희철 단독 버전과 설현 단독 버전으로 각기 따로 만들어졌다면 더욱 효과적이었을 것이라고 이 감독은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한 편의 광고를 충분히 ‘캐리’할 수 있는 재능과 호감도를 갖춘 톱스타들을 굳이 나란히 한 화면에 등장시키려는 욕심 때문에 통일감, 완성도, 콘셉트 모두 놓치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광고주의 판단 미스에도 불구하고 광고가 화제를 일궈낸 것은 역시 톱스타의 하드캐리 덕이라는 의견이다.
윤지원 yune.jiw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