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이동통신사들의 5G 관련 광고. 평창동계올림픽을 앞세운 KT 광고(위)와 소방관 화재 진압 현장 솔루션을 소개하는 SK텔레콤 광고(아래).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2017년 말 국내 이동통신업계 최대 화두는 '5G 상용화'다. 5세대(G) 이동통신은 LTE로 감당이 힘들 만큼 급증하는 데이터 전송량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앞으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커넥티드카, 자율주행차, 가상현실(VR)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실현될 핵심 인프라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이르면 내년 6월, 세계 최초로 5G 주파수 경매를 시행한다는 방침을 세웠고, 이에 따라 2019년이면 5G 조기 상용화가 실현될 분위기다. 국내 이통사들은 시장 선점을 위한 핵심 기술 개발과 생태계 확보를 위한 경쟁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I. 5G 기술경쟁, 장외 신경전으로 이어져
KT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공식 파트너사로 참여, 세계 최초로 5G 시범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으로 지난 10월 말 강원도 평창과 강릉 중심의 5G 시험망 구축을 완료했다. KT는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 봅슬레이에 달린 여러 초소형 무선카메라 영상을 경기 중 실시간 전송하는 ‘싱크뷰’, 시청자가 원하는 시점을 선택해 실시간 영상과 경기 정보를 볼 수 있는 '옴니뷰', 360도 VR, 5G 버스 등 5G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를 운영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E2E 인프라 오케스트레이터’라는 기술을 개발해 단말에서 기지국, 코어 장비까지 가상화를 연결, 5G 네트워크를 신속하게 제공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SK텔레콤은 지난 11월 초, 연구개발·영업·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의 직원 100여 명으로 구성된 ‘5G 상용화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TF는 'BM 분과'와 '상용화 분과'를 중심으로 운영 중이다. BM 분과는 5G와 AI, 자율주행차, 미디어 등 4차 산업 간 사업 모델(BM)을 찾는 데 주력하고, 상용화 분과는 5G 망을 구성하고, 제조사 및 장비 협력사와 기술 협업에 집중한다. 또한, SK텔레콤은 지난달 말 국내 장비 협력사와 신규 개발한 5G 중계기술의 시연에 성공해 서비스 음영지역을 해소하고 촘촘한 5G 서비스를 가능하게 했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은 국내 강소기업들과 5G 중계기술을 개발했다. (사진 = SK텔레콤)
KT와 SK텔레콤이 5G 주도권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앞서가는 가운데 LG유플러스도 서울 강남 도심에 5G 시험기지국을 설치하고 실제 환경에서의 서비스 테스트에 돌입했다. LG유플러스는 현재 IoT 서비스 분야에서 업계 최다인 100만 가입자를 거느리고 있어, 5G 상용화 이후에 실제로 이를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를 가장 널리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기술 및 서비스 개발 경쟁이 치열한 만큼 장외 경쟁도 심해지고 있다. 11월 말에는 SK텔레콤이 KT가 평창에 설치한 통신시설 관로를 고의로 훼손했다며 KT가 SK텔레콤 직원과 협력사 직원을 업무방해 및 재물손괴죄로 춘천지검에 고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SK텔레콤은 이에 대해 오해에서 비롯된 단순한 실수이며 이미 자발적으로 복구 조치를 완료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또한, SK텔레콤이 평창 올림픽 공식 협력사가 아님에도 평창올림픽 홍보대사인 ‘피겨 여왕’ 김연아와 스켈레톤 국가대표 윤성빈 선수가 등장하는 올림픽 대표팀 응원 영상을 지상파에서 방영한 것도 KT의 심기를 건드렸다. KT는 시청자들이 이 영상들을 통해 올림픽과 SK텔레콤을 관련짓게 되므로, 실제 올림픽 공식 파트너사인 KT의 메리트가 훼손된다는 입장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에도 공식 파트너였던 KT보다 붉은색 회사 로고와 응원박수 광고를 내세운 SK텔레콤이 월드컵 특수를 더 많이 누린 사례가 재탕되는 것을 KT 측이 우려한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SK텔레콤은 해당 응원 영상의 기획 및 제작은 방송사 측이 주도한 것이고, SK텔레콤은 제작을 협찬했을 뿐 대회 연계 마케팅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II. KT 대 SKT, 벌써 5G 광고 경쟁 치열
온갖 미디어에서 연일 4차 산업혁명에 관한 담론이 쏟아지면서 5G에 대한 일반 소비자의 관심도 높아졌다. 이에 이통사들은 벌써 5G 관련 광고를 통한 고객 붙들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정식 5G 서비스는 아직 1년 넘게 남았는데도 5G에 관한 광고 경쟁도 불이 붙었다. 5G 광고 경쟁은 LG유플러스보다는 앞서고 있는 KT와 SK텔레콤이 주도하고 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공식 파트너사임을 내세우는 KT의 5G 광고.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KT - "우리도 대한민국 국가대표"
KT 광고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세계 최초로 5G 시범 서비스를 준비 중인 기업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것을 대규모 국가대항 스포츠 행사 무렵에 특히 고조되는 시청자의 애국심에 기댄다. 올림픽 배경의 KT 5G 광고는 모두 세 편이 공개됐는데, 세 편 모두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5G 시작”이라는 슬로건으로 마무리된다.
11월 28일 공개된 ‘평창을 향한 또 하나의 도전’ 편 광고는, 관중의 관심 속에 열리는 경기는 아니지만, KT도 올림픽에서 다른 경쟁에 임한다는 사실을 알리며 사람들의 관심과 응원을 호소한다. “이 도전의 성공에는 함성도 환호도 없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우리는 시작합니다”라며 스포트라이트 밖에서 묵묵히 5G 인프라 구축에 임하는 KT의 입장을, 부와 명예가 아닌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올림픽 정신에 빗대서 어필한다. 텅 빈 경기장 관중석의 쓸쓸한 정서가 강조된 뒤 눈보라 속에서 5G 장비를 설치하는 KT 직원들의 모습으로 이어지는 구성이 시청자의 감성을 자극하기 좋다.
12월 3일 공개된 ‘대한민국의 첫 번째 도전! 응원합니다’ 편에서는 대한민국 여자 최초 루지 국가대표 성은령 선수를 소개하면서, KT의 5G 도전이 성은령 선수처럼 누구도 가지 못한 첫 번째 길을 열어가는 도전과도 같다고 말한다. 열흘 뒤인 12월 13일 공개된 ‘금메달 유망주 최민정 선수의 승리 비결’ 편에서는 금메달 기대주인 쇼트트랙 최민정 선수를 소개하면서, 그의 승리 비결이 압도적 스타트에 있는 것처럼 KT도 세계 5G 경쟁에서 시작부터 앞서가겠다는 각오를 밝힌다.
광고계 관계자는 “올림픽, 월드컵처럼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는 대형 스포츠 이벤트는 대기업 마케팅에 있어 절호의 기회”라면서 “이기고 지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삶의 다른 여러 영역과 비교하면 스포츠의 룰은 단순하다. 나를 대신하는 국가대표의 노력과 성과에 감동하고 열광하는 것은 시청자 감정이 순수해진다는 것이고, 그래서 무엇에라도 쉽게 물들 수 있다. 이윤 추구가 존재 이유인 기업이 정직한 스포츠맨십을 앞세운다는 허세도 잘 통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KT는 현시점에서 올림픽 공식 파트너사라는 포지션을 가장 적절히 이용하고 있다”며 “5G가 무엇인지 모르는 시청자도, KT가 자신만의 분야에서 세계와 경쟁하고 있다고 하니 응원하고 싶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SK텔레콤의 5G 광고 '당신의 첫 5G, 어느 해녀의 그리움’ 편.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SK텔레콤 - "5G도 사람을 향합니다”
SK텔레콤도 ‘웰컴 투 5G 코리아’라는 슬로건으로 세계를 겨냥하는 것 같다. 또한, SEE YOU TOMORROW 캠페인은 미래를 약속하는 것 같다. 하지만 SK텔레콤의 5G 광고는 예전부터 꾸준히 이어져 온 ‘사람을 향합니다’의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에도 감동을 자아내는 데 제대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SK텔레콤 5G 광고의 콘셉트는 5G 기술이 절실한 어떤 사람의 결핍을 먼저 보여주고, SK텔레콤의 5G 기술에 의해 드디어 그의 결핍이 채워지는 것을 극적인 음악과 함께 보여줌으로써 감동을 끌어내는 방식이다. 주인공과 기승전결 뚜렷한 사연이 담긴 전형적인 스토리텔링 광고다. 여기에 연예인이 아닌 실제 인물(일반인)이 등장해 실제 사연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같은 연출로 시청자에게 진정성까지 어필한다.
가장 먼저 주목받은 SK텔레콤의 감동 콘셉트 5G 광고는 제주도의 한 해녀 할머니를 등장시킨 ‘당신의 첫 5G, 어느 해녀의 그리움’ 편이다. 나이가 들어 이젠 바다에 들어갈 수 없는 해녀 할머니가 “내 집이고, 내 고향이고, 보물”이라며 그 바다를 그리워한다. 갯바위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기만 하는 할머니 모습에서는 분단국가 특유의 실향민 서사가 연상 돼 서글픈 민족적 공감대를 건드린다.
SK텔레콤은 5G 버스를 제주도로 보낸다. 이 차는 실내가 360도 입체 스크린으로 바뀌고, 입체 카메라로 찍은 영상이 상영된다. 버스가 곧 VR 체험관인 셈이다. 특히, 카메라와 스크린 모두 크고 생생한 4K 초고화질 영상을 구현하며, 이를 생방송으로 실시간 처리할 수도 있다. 극장 상영용 4K 영상만 해도 데이터 용량은 막대한데, 이건 실시간 전송되는 360도 입체 화면이다. 완성도 높은 5G 기술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SK텔레콤 광고 '당신의 첫 5G, 어느 해녀의 그리움' 편.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SK텔레콤은 이 버스를 이용해 할머니에게 바닷속 풍경을 체험하게 한다. 이젠 못 볼 줄 알았던 바다가 한결같은 모습으로 할머니를 맞이한다. 물질하던 동료 해녀도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창문(스크린)을 쓰다듬는 할머니의 거친 손마디와 환한 미소가 이산가족과 상봉한 실향민의 오열만큼이나 찡하다. 배경음악 ‘Can't take my eyes off you'의 클라이맥스가 고조되면서 할머니가 기쁨에 겨워 소리친다. “이 바다가 내 집이고, 내 고향이여!” 감동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이 영상은 SK텔레콤 유튜브 공식 채널에서 지난 9월 21일 공개됐고, 12월 14일 현재 840만 회 이상 조회됐다. 영상 아래 네티즌들이 남긴 댓글은 “보고 눈물이 났다”, “광고 보다가 울기는 처음”, “스타 없이도 감동적이고 좋은 광고” 등등 긍정적인 반응 일색이다.
두 번째 5G 광고는 원로 만화가 이정문 화백을 주인공으로, 옛날부터 화상통화가 가능한 휴대 전화나 물로 달리는 자동차(수소전지차) 등 미래를 상상하는 만화를 그려온 그가 SK텔레콤의 5G 체험센터 ‘티움’에 초청되어 첨단 미래 기술들을 시연하고 체험해보는 내용이다.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그의 모습은 충분히 감동적이지만 시청자 반응은 ‘해녀 편’에 못 미친다. 광고계 관계자는 “볼거리도 많고 완성도도 높다. 앞선 광고가 너무 강렬했을 뿐”이라면서도 “다만 이 화백의 결핍이 딱히 간절하게 느껴지지 않고, SK텔레콤이 겸사겸사 ‘티움’을 홍보하려는 의도가 드러나 몰입도가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강원소방본부 소방관들이 주인공인 SK텔레콤 5G 광고 '어느 소방관의 기도' 편.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고마운 소방관에게 유용한 기술 혁신
12월 8일 공개된 SK텔레콤의 새로운 5G 광고는 강원소방본부 소방관들이 주인공인데, 이 광고가 또 대박 조짐을 보인다. SEE YOU TOMORROW 캠페인 시리즈와도 연결되는 이 광고는 그간 광고에서는 좀처럼 보여주지 않던 재난 현장, 그것도 화재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불붙은 건물로 목숨 걸고 뛰어드는 소방관들의 결연한 모습과 함께 이들이 현장에서 겪는 애로사항이 자막으로 설명된다. 그리고 이에 대한 개선책으로 SK텔레콤의 몇몇 기술과 서비스가 소개된다. 마지막엔 고생 끝에 불길을 잡은 소방관이 활짝 웃는 얼굴로 끝이 난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가 소방관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고마움과 부채감이 함께 담겨있다. 형편없는 처우 문제가 드러나 공론화되고, 재난 현장에서 안타깝게 순직한 소방관들 소식이 전해지면서 최근 소방관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직업으로 꼽히게 되었다. 대한민국 소방관은 ‘헌신’이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린다. 심지어 광고에서 이들이 밝히는 애로사항이라는 것이, 강원도는 너무 넓고 외진 곳이 많아 현장 출동에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거나, 화재 현장은 시야를 확보하기 힘들어서 어디서 불길이 일어나는지, 어디에 잔불이 남아있는지 등을 파악하기 힘들다는 등 위험에 처한 시민을 더 빨리, 많이, 제대로 구조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어서 감동이 배가된다.
시민 구조를 위해 불 속으로 뛰어드는 그들의 모습을 담은 슬로모션은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을 자아낸다. 이런 분위기에서 바디캠, 드론 같은 장비들이 극적으로 등장하고, 이를 활용해 현장 상황을 모니터로 확인하고 지시하는 장면 등이 이어진다. 화면 구성만 봐도 이해하기 쉬운 스토리이며, 심지어 각 장면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강렬하다. 5G 광고 시리즈에 계속 쓰이는 배경음악 ‘Can't take my eyes off you’도 감동을 더 한다. 광고계 관계자는 “SK텔레콤이 사회에 크게 기여한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고, 큰 감동까지 더해져 기업 이미지 제고에 더없이 효과적일 광고”라고 평가했다.
SK텔레콤은 이 소방관 광고를 벌써 네 개의 버전으로 만들어 거의 모든 매체에서 집중적으로 틀고 있다. 특히 12월 10일 공개한 극장판 60초 버전은 설명적인 자막과 내레이션 대신 '어느 소방관의 기도'라는 제목의 시적인 내용으로 바뀌었다. 소방관은 어머니나 테레사 수녀 같은 헌신과 박애의 현신(現身)처럼 여겨질 정도다. 배경음악도 소울 가득하던 가수의 목소리를 빼고, 심플하고 잔잔한 기타 연주곡 버전으로 바꿔 드라마틱한 효과 대신 감성을 극대화했다.
윤지원 yune.jiw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