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소재로 한 포스코 광고 '뜨거운 열기' 편(왼쪽)과 올림픽을 간접적으로 언급하는 아우디코리아의 광고 'Progress never stops' 편.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올림픽에선 광고 경쟁도 뜨겁다. 세계인의 주목이 쏠리는 올림픽 같은 초대형 이벤트에서는 잘만든 광고 한 편으로 업계 판도까지 바꾸는 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개막(2월 9일)이 50일도 채 남지 않았다. 11개 공식 파트너와 12개 공식 스폰서 기업 외에도 25개 공식 공급사와 32개 공식 서포터사가 참여해 펼치는 평창올림픽 광고 대결에서 최종 금은동은 누가 차지할지를 눈에 띄는 광고들로 꼽아본다.
I. 포스코: 뛰어난 영상미에 기업 아이덴티티도 선명
이번 올림픽에 공식 파트너사로 참여하는 포스코는 12월 15일 ‘뜨거운 열기’ 편 광고를 공개했다. 이 광고는 올림픽에서 다방면으로 사용되는 철과, 철 가공에 쓰이는 열기를 통해 철강 기업이라는 포스코의 특징을 부각하면서, 이를 선수의 뜨거운 열정 및 응원의 열기와 적절히 결합한 창의성이 돋보인다.
올림픽에서 철은 건물 및 시설을 짓는 데도 쓰이지만, 각종 썰매나 스케이트 날 등에도 쓰인다. 포스코에 따르면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철이 사용되는 종목은 21개 종목 중 20개 종목이다. 이 광고는 그 20개 종목 중 6개 종목을 선정해 경기 장면을 묘사한다. 각 종목에는 평창올림픽 홍보대사인 정승환(장애인 아이스하키), 유동혁(스피드스케이팅), 임은수(피겨스케이팅), 임명철(바이애슬론) 등 10명의 올림픽 대표선수들이 직접 출연했다.
특별한 특수효과로 꾸민 영상의 특징이 가장 눈에 띈다. 포스코는 특수효과를 통해 화면을 ‘열화상 이미지’처럼 보이게 했다. 스케이트 날, 봅슬레이 날 등 경기 장비 중 철이 사용된 부분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붉은빛을 발하게 만든 것이다. 이는 고열을 이용한 철 가공 장면을 연상시켜 포스코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뚜렷이 드러낸다.
▲포스코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공식 파트너사다.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주제와 영상미에 모두 기여하는 절경
기량을 펼치는 선수의 실루엣과 철의 붉은 빛이 더 선명하게 대비되어 보이도록 영상을 전반적으로 차갑고, 어둡고, 채도가 낮은 톤으로 만들었는데, 특히 무채색의 배경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 돋보인다. 알프스 스텔비오, 노르웨이 전나무숲, 북극 빙하, 시베리아 빙판 등 웅장하고 아름다운 겨울의 자연을 배경으로 삼은 것은 동계올림픽이 겨울 이벤트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기도 하지만, 바로 이런 영상 콘셉트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일부 장면은 실제로 그곳에 가서 찍었고, 일부 장면은 세트장에 대형 빙상장을 만들어 합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명과 후반 작업을 통해 빙판은 더욱 검게 처리하고, 하늘도 흐리게 묘사했다. 만약 평범한 올림픽 경기장이 배경이었다면 밝은 조명과 객석, 펜스 등 실내 여러 설비의 인공적인 디테일과 갖가지 색깔이 철에 대한 집중도를 흐렸을 것이다.
선수들이 움직이면 스케이트 날에서 시작된 철의 붉은 빛과 열기는 선수의 몸과 선수가 움직인 궤적을 따라 주변의 자연으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인간과 자연이 동계스포츠로 하나 되며, 그 매개체가 바로 포스코의 철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포스코 '뜨거운 열기' 광고는 열화상 이미지를 통해 철의 열기를 강조하는 대신 선수와 배경의 톤은 무채색에 가깝게 만들었다.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광고를 시청한 네티즌 반응은 호평 일색이다. 이들은 댓글을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었던 광고”, “지금까지 본 광고 중에서 최고”, “올림픽의 다이나믹한 모습을 잘 표현하면서 그 속에 자연스럽게 기업 어필이 들어간 점이 좋았다”며 칭찬했다.
광고계 관계자는 “열화상 이미지에서 착안한 특수효과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만나 미학적으로 뛰어난 영상을 창조했다. 최근 몇 년간 나온 광고 중 가장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영상이고, 심지어 메시지도 직관적으로 파악된다”고 극찬했다.
II. 아우디코리아: 보편성-현지화-올림픽…영리한 3단 공격
아우디코리아가 12월 1일 공개한 ‘Progress never stops’ 광고는 엄밀히 말해 올림픽 광고가 아니다. 평창동계올림픽의 공식 파트너가 되려면 500억 원 이상, 공식 스폰서가 되려면 150억 원 이상을 후원해야 한다. 그리고 아우디코리아는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의 공식 후원사가 아니다. 따라서, 아우디코리아는 평창올림픽을 직접 언급하는 광고를 제작해선 안 된다.
이 광고의 주인공은 굴렁쇠다. 한 아이가 가지고 놀던 굴렁쇠가 아이의 손을 떠나 혼자 세상으로 나아간다. 굴렁쇠는 다양한 길을 따라 굴러가며 세상을 여행한다. 우리는 굴렁쇠의 여행을 통해 시대의 변화를 목격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일어났던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이벤트들이 향수를 자극하기도 하고, 동시에 과학과 기술이 진보해온 과정도 보게 된다. 여행의 끝에서 굴렁쇠는 아우디 자동차와 만난다. 아이 없이 혼자 굴러가는 굴렁쇠처럼 아우디도 운전자 없이 도로를 자율주행한다. “진보는 멈추지 않는다”(Progress never stops)라는 광고 카피와 ‘기술을 통한 진보’라는 아우디의 캐치프레이즈가 차례로 뜬다.
▲아우디코리아의 'Progress never stops' 광고는 굴렁쇠의 여행을 통해 과학기술의 진보 과정을 보여준다.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이 광고는 비교적 깊이 있는 주제와 메시지를 이해하기 쉽고 감성적인 동화 풍 스토리에 담아 전달하는 창의적이고 지적인 광고다. 굴렁쇠와 아우디(자동차)의 대비 및 배치만 해도 상당히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굴렁쇠와 아우디 엠블럼의 조형적 유사성은 간단하게 파악된다. 그리고 굴렁쇠는 바퀴의 원형(元型)과 가장 기본적 기능을 응용한 장난감이며, 아우디 엠블럼의 동그라미 네 개는 자동차의 네 바퀴를 상징한다. 바퀴 기술(자동차 과학)의 기원에 굴렁쇠가 있다면, 관련 과학기술이 가장 첨단으로 진보한 현재에는 자율주행 기능을 뽐내는 아우디 같은 고성능 자동차가 있다. 자동차 과학 기술 진보의 역사에서 처음과 현재를 굴렁쇠와 아우디를 통해 한 화면에 담은 것이다.
또한, 장난감인 굴렁쇠가 인간의 어린 시절을 대변한다면, 어른의 전유물인 아우디(고성능차)는 성장 혹은 성취의 상징이다. 이처럼 이 광고는 인류의 기술 진보의 역사나 개인의 성장의 본질인 '시간'을 굴렁쇠와 자동차의 '이동'에 담아 표현하고 있다. 한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처럼 아우디의 고성능 차는 시간과 역사를 차근차근 딛고 발전해 온 결과물이라는 ‘기술을 통한 진보’의 메시지를 문학적, 감성적으로 잘 풀어낸 광고다.
▲아우디코리아 광고는 얼핏 보면 불특정 도심과 첨단 시설 등의 이미지를 나열하는 것 같지만, 위는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거리응원의 열풍이 불었던 세종로이고, 아래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펼친 세기의 대국을 보여주고 있어 한국을 아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얼핏 보면 글로벌, 알고 보면 한국
그런데 이 광고에는 뭔가 특별한 요소가 더 담겨 있다. 바로 아우디라는 독일 대표 브랜드의 치밀한 한국 현지화 전략이다.
이 광고에는 한복, 고궁, 태극기, K팝처럼 한국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요소가 한 번도 나오지 않거나, 얼핏 나오더라도 이미지의 중심에 등장하지 않는다. 간판의 한글,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의 거리 응원, 그리고 그 거리 응원이 펼쳐졌던 세종로의 충무공 동상 정도를 빼면, 세계 어느 대도시를 배경으로 삼아도 대동소이한 그림이 나올 법하다. 그래서 이 광고는 인류 보편적인 정서에 어필하는 광고처럼 느껴진다. 한국에 대한 배경 지식이 거의 없는 외국인이 봐도 위에 서술한 스토리와 주제, 그리고 광고주가 의도한 감성까지 오롯이 전달받을 만한 광고다.
하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전혀 다르게 느낄 요소로 가득한 광고다.
우선 굴렁쇠의 의미가 남다르다. 광고의 핵심 소품인 굴렁쇠는 여러 문화권에서 수 세기 이상 장난감으로 쓰여 온 보편적인 물건이다. 하지만 첫 장면처럼 옷을 입은 아이가 그렇게 넓은 잔디밭에서 굴렁쇠를 굴린다면, 한국인 대다수가 특정 이벤트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넓은 스타디움에서의 중계 화면을 연상시키는 첫 쇼트의 망원렌즈, 두 번째 쇼트의 넓은 부감 구도가 더해지니, 한국인은 조건반사적으로 88 서울올림픽 개막식의 하이라이트였던 ‘굴렁쇠 소년’의 등장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광고에는 내레이션을 하고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 이름이 '윤태웅'이라는 정보를 자막으로 제공하고 있다. 윤태웅은 1981년 서독 바덴바덴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1988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를 대한민국 서울로 발표하던 날 태어난 사람이며, 이날 태어난 아이들 중 선발되어 88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굴렁쇠를 굴리며 등장했던 '굴렁쇠 소년' 본인이다.
▲굴렁쇠를 굴리는 아이의 복장과 넓은 잔디밭, 그리고 그 모습을 멀리서 보여주는 구도 등이 88 서울올림픽 개막식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의 운동장으로 향하는 출구처럼 보이는 곳에서 아이가 굴렁쇠를 굴리며 달리고 있다. 아래 내레이션 목소리의 주인공이 88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굴렁쇠 소년으로 등장했던 윤태웅 씨임을 알리는 자막이 선명하다.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VR 체험 중인 남자의 옆을 지나는 굴렁쇠. 눈길이 먼저 가는 것은 남자와 굴렁쇠지만, 이 공간은 인천국제공항이며 뒤쪽의 유리 튜브는 자기부상철도 승강장이다.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굴렁쇠의 여행은 진보로의 여행인데, 그것이 88 서울올림픽에서 시작하고 있다. 실제로 88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대한민국의 경제와 문화, 국제적 위상이 급격히 발전했다고 배우지 않은 한국인은 거의 없다.
아이 손을 떠난 굴렁쇠가 처음 나온 세상은 아마도 서울의 서소문 고가도로다. 화면 구석에 시청과 서울역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살짝 보인다. 고가도로가 지금은 서울 곳곳에서 사라지고 있지만, 많은 한국인이 자부심을 느끼는 ‘산업화’나 ‘한강의 기적’을 대표하는 시설 중 하나였다.
1990년대 대중문화 황금기의 대표 TV 프로그램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 이어 세계 최고 수준의 보급률을 자랑하는 휴대전화와 번화한 도심이 소개된다. 이어 세종로 충무공 동상과 2002년 한일월드컵 거리 응원, 인간형 이족보행 로봇 휴보, 화려하게 탈바꿈한 DDP, 프로바둑 기사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인천국제공항 등 한국인 대부분의 감성과 자부심을 자극할만한 상징적 이벤트와 랜드마크가 광고를 꽉 채운다.
광고에서 한국적이지 않은 것은 맨 뒤에 등장하는 독일 차 아우디뿐이다. 하지만 위에 설명한 것처럼 굴렁쇠와 엠블럼, ‘이동’하는 성질의 유사성, 바퀴 과학의 처음과 끝이라는 상징성 등으로 인해 한국-독일의 문화적 이질감은 간단히 상쇄되고 자연스럽게 앞의 장면들과 이어지면서 아우디는 한국인 감성에 편승한다. 자율주행차가 ‘기술을 통한 진보’를 나타낸다면, 이 광고는 ‘감성을 통한 현지화’의 교과서로 삼아도 좋을 정도다.
평창 언급 없어도 평창 같아
여행의 종착지라 할 만한 마지막 장면은 눈 덮인 설산이고 왼쪽에는 스키 리조트가 보인다. 그 배경 위로 아우디 엠블럼의 동그라미 네 개가 커다랗게 뜬다. 단순히 생각하면 그들의 여행이 아주 멀리까지 갔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 같다. 우리 눈에는 전부 다르게 보이지만 말이다.
이 광고는 올림픽 공식 후원사가 아닌 기업들이 올림픽 열기에 슬며시 숟가락을 얹는다는 최근의 앰부시(ambush) 마케팅 논란에서 빠짐없이 언급된다. 아우디코리아가 이번 평창올림픽 공식 후원 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우디코리아 광고의 마지막 장면. 왼쪽의 스키점프대, 오륜기와 닮은 아우디 엠블럼 등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연상시킨다.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평창 앰부시 마케팅 논란에 언급되는 다른 기업은 SK텔레콤과 소셜커머스 업체 위메프, 롯데카드 등이다. 이들은 대부분 평창동계올림픽을 직·간접적으로 언급했다. SK텔레콤은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인 피겨 여왕 김연아가 스노보드와 바이애슬론을 직접 소개하고 나서 “스노보드 국가대표를 함께 응원해주세요. See you in 평창~”이라고 말하는 광고를 내보냈다. 위메프는 ‘팽창 롱패딩’이라는 제품을 판매했다. 롯데카드는 올림픽 후원사 등급 중 가장 높은 월드와이드 올림픽 파트너인 비자카드를 앞세워 평창올림픽 공식 엠블럼까지 광고에 삽입했다.
아우디코리아의 광고는 50일 남은 평창동계올림픽 개최국 국민인 한국인의 눈에 영락없는 올림픽 광고로 보일 것이다. 여행의 끝이 겨울이다. 시작이 88서울올림픽처럼 보였으니 맥락상 끝은 평창이다. 왼쪽의 리조트 시설물은 스키점프대로, 멀리 보이는 산세는 태백산맥의 그것으로 보인다. 커다랗게 강조된 아우디 엠블럼도 오륜기를 연상시킨다. ‘올림픽 한국 30년’ 정도의 제목이 달려도 어색하지 않고, 평창올림픽 공식 홍보영상으로 사용해도 부족한 점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광고에서 한국을 노골적으로 보여주지 않은 것처럼 올림픽 역시 한 번도 직접적으로 언급된 적이 없다. 평창의 ‘ㅍ’도, 올림픽의 ‘ㅇ’도 나오지 않는다. 보기에 따라 그저 ‘기술을 통한 진보’라는 카피에만 충실한 글로벌 광고로 보인다. 교묘해도 너무나 교묘하다.
윤지원 yune.jiw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