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의 최근 기업이미지 광고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통해 사명감 혹은 소명의식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광고가 공개된 후 3주 만인 2월 1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계열사인 한화큐셀 진천 공장에서 아들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을 맞이했다. 문 대통령이 국내 10대 그룹의 생산 현장을 방문한 것은 취임 후 이날이 처음이었다. 문 대통령은 한화큐셀을 업어주러 왔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높이 산 것은 한화큐셀의 새로운 채용 제도에 반영된 기업의 소명의식이었다.
I. 올림픽 광고로 기업 사명감 강조
한화그룹은 지난 1월 10일,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소재로 한 TV 광고, '모두가 선수다' 편을 공개했다. 다른 평창 광고들을 통해 익숙했던 아이스링크, 스키 슬로프, 봅슬레이 트랙 등을 배경으로 연습 장면, 시합 장면, 응원 장면 등이 펼쳐진다. 그러나 이번 한화 광고는 색다르다.
이번 한화 광고에서 주인공은 선수나 국민이 아니다. 또한, 광고주 자신도 아니다. 스케이트 날을 정비하는 장비 담당자, 스키장 슬로프의 설질을 관리하는 스노우 메이커, 봅슬레이 경기를 분석하는 기록 분석관, 한화가 성화 봉송 전 과정에 투입한 한화 불꽃지킴이, 그리고 선수들을 응원하는 관객까지, 중계 화면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한화는 도중에 슬쩍 끼어 있다.
이번 광고는 내레이션이 있는 버전과 없는 버전이 있는데, 한화그룹은 처음에 내레이션이 포함된 버전을 공개했다가 곧바로 내레이션이 없는 버전도 내놓았다. 내레이션은 “나에겐 화려한 조명도 뜨거운 함성도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있는 곳에서 가장 뜨거운 경기를 펼친다. 꿈을 향해 뛰는 모두가 선수다”라고 말한다.
스케이트 날을 갈고, 그걸 신고 훈련하는 선수와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에서 선수와 스태프가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으며, 똑같은 성취감을 느낀다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한 광고 연출가는 "메시지가 뚜렷하고, 연출이 잘 되어 있어 언어 없이도 의미가 잘 전달된다"며 "내레이션 없이 배우의 표정과 감동적인 음악만 나오는 쪽이 몰입감이 높다"고 분석했다.
"광고 말고 실제로 잘 해야지"
광고 영상을 본 시청자들은 댓글 및 SNS를 통해 "단순하게 선수들이 나오고 '한화가 응원합니다' 하는 광고가 아니라, 그들만의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것이 좋다", "메시지를 쉽게 이해했고, 감동적이었다", "다른 기업들이 올림픽 붐에 편승하는 데만 급급한 듯 광고의 크리에이티브가 부족한 것에 비해 한화는 올림픽의 의미와 기업의 역할을 고심한 진정성이 보인다"는 등 긍정적인 반응을 많이 보였다.
반면, "불꽃 외에 한화와 무슨 관련이 있는 광고인지 잘 모르겠다"라는 의견도 있었다. 기업이 이미지 광고를 집행하면서 정작 자신의 브랜드를 부각하지 못했다면 반응이 아무리 좋아도 실패한 광고로 봐야 한다. 그러나 앞선 광고 연출가는 이에 대해 "광고에서 성화 불꽃 지킴이 역할은 다른 직군에 비해 알아보기 어렵다"면서도 "의도는 달랐겠지만, 광고주가 묻히는 것이 오히려 광고 주제와는 맞다"고 평가했다.
일부 냉소적인 시청자는 댓글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일가의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연이어 논란이 되는 현실을 꼬집으며 광고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 댓글이 달려 있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 한화그룹은 기업이미지 제고를 위한 조치가 필요한 시기임을 입증하고 있다. 기업 이미지 광고는 그러한 상황에 대한 대응 조치 중 하나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한화의 이번 광고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 성화봉 및 불꽃놀이 공식 파트너 기업임을 알리고, 동시에 공익성이 강조된 메시지를 통해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광고다. 그리고 한화가 택한 공익성 메시지는, 포지션과 무관하게 같은 꿈을 이루는 데 기여하는 "모두가 선수"라는 사명감과 자부심에 관한 것이다. 한화 스스로 대중에게 그러한 이미지로 비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광고를 통해 어렵게 추구한 긍정적 이미지는 최근 한화가 추진한 채용 정책으로 상당 부분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 대중은 모르지만 적어도 정부는 한화를 향해 "대견하다"는 웃음을 지어 보였기 때문이다.
II. "일자리 나눔·상생 추구하는 기업" 선언
한화큐셀은 2월 1일 충북 진천의 공장에서 ‘일자리 창출 공동선언서’ 서명식을 개최했다. 사측과 노조는 근무시간을 줄이고, 급여는 90%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500명을 추가로 채용하는 데 동의했다.
노사 합의에 따라 한화큐셀 근로자 1500명은 기존 3조 3교대 근무제를 4조 3교대로 전환한다. 1인당 근무시간은 주 56시간에서 42시간으로 25%(14시간) 단축되며, 퇴근만 빨라지는 것이 아니라 주 6일 근무, 1일 휴무 시스템이 아닌 주 4일 근무, 1일 휴무로 바뀐다.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지며, 피로에 의한 생산성 저하 또는 안전사고 문제의 개선도 기대할 수 있다.
한화큐셀은 이에 따라 추가로 필요한 인력 500여 명(33.3%)을 지역 청년 인재들 가운데 신규 채용할 예정이다. 이는 청년 고용 절벽 해소 및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보탬이 된다. 그러면서 사측은 기존 급여를 90% 이상 수준에서 유지하기로 했고, 노조가 이에 동의해 노사 간 합의에 따른 일자리 창출이라는 의미도 크다.
처음부터 사회적 역할 고민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일자리 나누기’의 모범사례라며 이례적인 대기업 생산라인 방문의 취지를 밝혔다. 지난해 6월 21일 청와대에서 제1차 일자리위원회를 열고 “기업이 일자리를 많이 만들면 업어드리겠다”고 한 말을 실천하기 위한 행보였다. 또한, 12월 27일 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민간의 일자리 만들기 붐’을 적극 주문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준 한화큐셀을 몇 번이나 "우리 한화큐셀"이라고 칭했다.
여러 마리의 토끼를 잡는 효과가 있지만, 기업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계산해보면 사측이 기존 급여 기준 300명을 채용할 비용으로 500명을 신규 채용해 생산성은 기존 수준으로 유지되고, 아울러 개선된 근로 여건을 통해 생산효율이 늘어날 것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또한, 한화그룹 관계자는 이에 대해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생각하면 결코 큰 부담이 아니”라고 밝혔다.
한화큐셀 진천 공장은 애초에 김승연 회장이 “한 해가 아니라 미래를 보고 투자하자”고 강조하면서 결정된 생산 거점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2016년 김 회장이 “단순히 태양광 산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본 데 그친 것이 아니라, 국내 고용 증대는 물론 지역 경제와 나라 경제에 보탬이 되겠다는 의지,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인건비가 훨씬 싼 말레이시아 대신 충북 진천을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렇게 포기하지 않은 결과 사업 성과도 좋고, 2공장도 건설하고, 직원도 2천 명으로 늘어나니 뿌듯하다”며 기업 나름의 사명감이 바탕이 되었음을 밝혔다.
III. 광고보다 강한 대통령 뉴스의 파급력
이날 김승연 회장이 문 대통령을 직접 맞이한 것도 크게 화제가 됐다. 그동안 문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들, 특히 김승연 회장과의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대한상공회의소가 해마다 주최하는 재계 신년인사회에 가지 않았고, 청와대 신년회에는 재계와 중소기업과 노동계를 한꺼번에 초청했다. 또한, 적폐 청산을 기치로 내세우는 정부가 재벌과 대기업을 청산해야 할 적폐로 보고 있을 거라는 인식이 재계 전반에 깔렸었다.
특히, 김 회장은 자신과 자식들의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 때문에 '갑질 과한 재벌'이라는 등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진 데다가, 뇌물수수-국정농단 등으로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초등학교 동기 동창인 인연까지 얽혀 여러모로 이번 정부와 가장 궁합이 나쁜 대기업 총수로 여겨졌다. 이런 세간의 선입견을 인정이라도 하듯 김 회장은 지난해 7월 문 대통령이 기업 총수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맥주 간담회에도 불참했고, 방미 일정에 동행한 경제 사절단에도 합류하지 않는 등 문 대통령과의 대면을 미루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런 김 회장이 이번에 문 대통령의 경제 정책인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를 적극 수용했고, 문 대통령은 공언한 대로 김 회장을 업어주기 위해 진천으로 달려왔다. 문 대통령은 한화큐셀의 일자리 나눔을 적극적으로 치켜세웠을 뿐 아니라, 태양광 사업에 관해서도 진지한 관심을 보여 한화그룹을 뿌듯하게 만들어줬다.
실리 챙기고, 홍보 효과까지
한화는 이번 문 대통령의 방문을 통해 얻은 것이 많다. 우선, 실리를 취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됐다. 한화큐셀은 태양광 셀·모듈 생산 분야의 글로벌 선도 기업이지만, 최근 미국의 세이프가드 선언으로 직격탄을 맞을 상황이다. 이에 이날 문 대통령은 민관대책협의회를 가동해 세이프가드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직접 약속했다.
또한, 해외시장에 비해 미미한 규모인 태양광 에너지 내수 시장을 활성화시켜 수출 감소의 타격을 완충시킬 수 있도록 돕겠다고도 했다. 태양광 내수 시장 활성화는 지난 7월 청와대 기업간담회에서 김 회장 대신 참석했던 금춘수 한화그룹 부회장과도 논의했던 내용이다. 머지않아 입지조건 규제 완화 및 신재생공급의무비율 조정 등 상당히 구체적인 정책이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문 대통령이 추진하는 신재생에너지 정책인 '3020' 플랜의 이행 계획에는 2030년까지 약 70조 원을 투입해 태양광 발전소 설비를 확충한다는 내용이 비중 있게 포함되어 있다. 그동안 태양광 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온 한화그룹은 최대 수혜자가 될 예정이다.
이런 실질적인 혜택 못지않게 큰 것은 대통령 관련 뉴스의 파급력과 그에 따른 홍보 효과다. 광고계 관계자는 "이날 60초짜리 한화 광고가 TV에 방영된 것보다, 문 대통령과 김 회장이 좋은 일로 만났다는 뉴스가 훨씬 자주, 긍정적으로 노출됐다"라며 "한화그룹이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공헌을 하는 기업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얻은 것은 물론, 대중에 아직 낯선 한화큐셀의 사명과 사업 분야, 글로벌 성과 등에 대한 홍보 효과가 컸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또한, 문 대통령과 김 회장이 나란히 선 모습, 여기에 김 회장의 장남이자 한화큐셀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김동관 영업담당실장(CCO) 전무까지 함께 있는 모습 등을 대중에게 보인 것도 한화그룹 홍보팀이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그림"이라고 밝혀, 광고보다 실제 경영에 드러나는 행보가 기업 이미지 제고에 더욱 중요함을 강조했다.
▣ 광고&기업 시리즈
㉗ 기업 이미지광고 ① 롯데, 반세기만의 절실한 이미지광고인데…"왜 이리 단조?"
㉖ 올림픽 광고 승자는? ③ 심플하지만 속깊게 전달한 대한항공 '쿨 광고'
㉕ 올림픽 광고 승자는? ② 치밀한 코카콜라 vs 완성도 아쉬운 노스페이스
㉔ 올림픽 광고 승자는? ① 포스코·아우디: 잘 찍은 공식파트너 광고 vs 너무 영리한 매복 광고
㉓ KT 대 SKT 완전 다른 5G 광고: 국민이냐 사람이냐
㉒ 케이뱅크·배스킨라빈스 편: 카리스마男 무너지니 탈(脫)권위 재미가 쏠쏠
㉑ LG유플러스 편: LGU+ 아이폰8 광고에 “물건사면 소외극복된다는 옛날방식 아쉽네
⑳ 보일러 ② 귀뚜라미·대성쎌틱 편: CM송 꽂아넣은 귀뚜라미 vs S라인만 보여준 대성쎌틱
⑲ 보일러 ①경동나비엔 편: 좋은 스토리·완성도와 친환경 콘셉트로 1위 굳히기
⑱ 대원제약 콜대원 편: 공들인 말장난에 제품 인지도 쑥쑥
⑰ 셀트리온·메디톡스 편: 그냥 달리기만 한 광고 vs 신화까지 터치한 참신
⑯ 삼성-애플-LG 편: 아이폰은 '팀킬', 노트8 보수적…웃는걸 보여줌과 웃게 만듬의 차이
⑮ 한국타이어 편: 뚜렷 메시지+세련 영상…그런데 왜 항상 똑같지?
⑭ G마켓 편: "광고주가 판단미스해도 김희철-설현은 하드캐리
⑬ 카카오페이 편: 첨단은 꼭 명랑해야 해? '쓴 아이콘' 이상민 내세운 잔재미로 "빅히트"
⑫ 롯데하이마트·삼성전자·LG전자 편: 찬 바람은 당연…이제는 똑똑한 에어컨 강조
⑪ 하나투어 편: 현지 맛집이냐 한국서 간 맛이냐, 그게 문제로다
⑩ 알바천국 편: 기업 광고가 이렇게 정치적일 수 있다니
⑨ 하이트진로·오비맥주 편: 광고로 띄운 저가 전략, 알고보니 궁여지책?
⑧ 케이뱅크 편: 알바 20대 vs 쇼핑열광 20대 "어느게 현실?"
⑦ 위메프 편: '재밌지 않은' 정우성이 셀프디스 하는 재미
⑥ KCC 바닥재-창호 편: 딱 33자로 공감 일으킨 카피의 힘
⑤ XYZ포뮬러 편: 화장품 광고에 꽃미녀-미남 아닌 웬 식빵
④ 블랙야크 편: "아웃도어 광고, 꼭 야외서 해야 해?"
③ SKT '티뷰센스' 편: 상투 벗어났지만 속도감엔 아쉬움
② SK매직 편: 이질적 기업의 만남을 엮어낸 사운드 마술
① 현대카드 편: 스마트폰 덕에 ‘세로 세상’ 됐는데 왜 신용카드만 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