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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기업 : 케이뱅크·배스킨라빈스] 카리스마男 무너지니 탈(脫)권위 재미가 쏠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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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65호 윤지원⁄ 2017.12.08 08:58:20

▲케이뱅크 광고(왼쪽)와 배스킨라빈스 광고.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바야흐로 탈(脫)권위의 시대다. 새 정부 얘기뿐 아니라, 요즘 광고계의 한 트렌드에 관한 얘기다. 평소 고급스럽고 중후한 카리스마 이미지로 활동해 온 중장년 남자 연예인들이 광고를 통해 망가지는 사례가 잦아지고 있다. 신사의 품격에는 빈틈이 생기고, 왕의 위엄은 웃음거리가 된다.


케이뱅크: "이병헌의 멋뿐이었다면 새롭지 않았을 것"

케이뱅크는 지난 10월부터 48세의 명배우 이병헌 씨를 메인 모델로 내세운 '혜택은 역시 케이뱅크' 시리즈 광고를 집행했다. 케이뱅크가 제공하는 각각의 서비스가 시중 은행과 어떻게 다르고 어떤 장점이 있는지를 여러 가지 상황을 통해 보여주고 내레이션으로 설명하는 구성의 광고다. 

시각적 콘셉트는 모던하기보다 클래식하다. 촬영 및 조명은 '필름 느와르' 영화처럼 다소 어둡고 콘트라스트를 강조한다. 이병헌은 격식을 갖춘 짙은 색 정장과 빈틈없이 빗어 넘긴 헤어스타일로 완벽한 신사의 모습을 보인다. 20년 넘게 톱스타의 자리를 지켜온 중견 배우답게 카메라를 향해 걸어가는 동작만으로도 특유의 멋과 카리스마를 풍긴다. 여기까지는 매력적인 스타일과 고급스러움을 강조한, 프리미엄 서비스를 자랑하는 광고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프리미엄 지향 광고는 여러 분야에서 너무 흔하다. 케이뱅크 광고도 여기까지였다면 창의력이나 개성이 부족한 광고였을 것이다. '혁신'을 언급하며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기업이 이처럼 안일한 광고를 만들었다면 앞뒤가 맞지 않았을 터.

▲케이뱅크 광고에서 반전의 친근한 모습을 보여준 이병헌.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곧 반전이 따른다. 한 광고 관계자는 “이 광고의 진짜 의도는 공들여 쌓은 스타일과 분위기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우리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있다”고 했다. 반전의 실체는 단순한데, 바로 멋진 이병헌이 짓는 '바보 웃음'이다. 케이뱅크의 서비스에 만족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는데, 하필 촌스럽고 바보 같은 웃음소리와 표정이 튀어나온다는 설정이다. 이병헌 스스로도 당황해 얼른 태도를 추스르고 주위 눈치를 살피게 되고, 이런 모습까지도 다소 바보같이 그려진다.

예를 들어 ‘네이버페이 체크카드 편’에서는 이병헌이 자신과 안 어울리게 귀엽고 깜찍한 체크카드를 카운터에 내민다는 반전, 그리고 디자인이 부끄러워도 내심 좋아하는 이병헌의 바보 웃음과 머쓱한 수습이 이어진다.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이병헌은 원래 그런 귀여운 캐릭터를 좋아했다는 설정일 수 있는데, 어쨌든 카드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병헌은 여러 작품에서 코믹한 연기를 종종 했고, 잘 표현해 왔다. 그런데 광고에서 이처럼 인간적이고 코믹한 모습을 보인 일은 드물었다. 이 반전은 광고 속 이병헌뿐 아니라 이제까지 이병헌이 구축해 온 카리스마까지 망가뜨린다. 하지만 소위 ‘연예인 굴욕’이라고 하는 부정적인 망가짐이 아니라 친근함을 끌어내는 망가짐이다. 

바보 웃음이란 평소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쓰게 되는 이른바 '마스크'가 벗어지면서 드러나는 웃음이다. 바보 웃음이 통제되지 못하는 이유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꾸밈없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서비스에 진심으로 만족했다는 의미를 담았다. 친근감 유발과 만족감 표현이라는 바보 웃음 반전의 의도는 쉽게 전달된다.

반전은 그 자체로 케이뱅크가 추구하는 서비스 혁신의 방향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기존 금융권의 서비스가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새에 치중하느라 진정한 고객 만족에 대한 고민과 기여가 부족하지 않았는가 묻고, 케이뱅크는 바보 웃음이 나올 만큼 진정한 고객 만족을 추구한다는 표현이다. 예컨대 카드의 본질보다 세련된 디자인을 더 앞세우는 일부 카드사들과 달리 케이뱅크는 (이 광고처럼) 멋과 스타일은 무너지더라도 고객을 진짜로 웃게 할 유용한 서비스를 담았다는 뜻이다.

▲배스킨라빈스 광고의 김영철(맨 위 사진 가운데).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배스킨라빈스: '김영철 전하'가 근엄할수록 더 웃겨

비알코리아(주)의 아이스크림 전문 브랜드 ‘배스킨라빈스’가 지난 추석 시즌에 내보낸 광고는 조선 시대 왕의 행차에서 시작되어 코믹한 반전을 일으킨다. 장엄한 배경음악과 함께 어딘가로 행차하시던 왕이 “가족에게 추석 선물을 해야겠다”며 긴 행렬을 멈춰 세운다. 멈춘 곳은 엉뚱하게도 배스킨라빈스 매장 앞이다. 시작하자마자 과감한 반전이다.

조선의 왕과 아이스크림 매장 사이에는 수백 년의 시간적 간극과 동서양의 공간적 간극이 있다. 또한, 왕과 아르바이트생 사이에는 뚜렷한 계급 차이가 있다.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한데 섞여 시청자의 시선을 붙잡는다.

이질감을 응용한 황당하고 뻔뻔한 상황이 이어지며 유머가 누적된다. "주상 전하 납시오!"라는 대사와 어안이 벙벙해진 알바생의 표정이 배치되고, 왕이 위엄 있게 아이스 모나카 선물세트를 주문하거나 호위무사가 알바생을 향해 칼을 뽑으며 "무엄하다"는 호통을 치는 것 모두가 웃긴 상황이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털끝만큼도 웃지 않고 끝까지 근엄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왕의 표정이다. 왕의 행동과 대사 중에 딱히 우스운 것은 없지만 첫 반전 이후로 왕은 존재 자체로 웃음의 이유가 된다. 왕 특유의 어휘와 '아이스 모나카 세트'라는 말이 한 문장에 섞이는 상황이 부조리하기 때문이며, 동네마다 들어선 대중적인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위엄을 이렇게까지 표현하는 것이 어리석어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7년 대한민국 도심의 배스킨라빈스 매장에서 이런 왕을 마주친다면, 그건 분명 코스프레 이벤트거나 몰래카메라일 것이다. 둘 다 아니라면 남은 이유는 타임머신 연구가 드디어 성공한 것 정도겠지 싶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황당한 설정으로 웃음을 만드는 배스킨라빈스 광고.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왕 역의 배우는 평소 중후하고 선 굵은 연기로 사랑받아 온 김영철 씨다. 40여 년 경력의 그는 드라마 '야인시대'에서의 김두한, '태조 왕건'에서의 궁예 등의 역할로 큰 인기를 얻었다. 김지운 감독의 액션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라는 대사의 보스 역할로도 많은 찬사를 받았다.

이런 역할들은 모두 힘이나 권력을 쥐고 이를 휘두른 인물들이다. 김영철은 현실에서 접하기 힘들 정도의 카리스마를 뿜는 연기로 그 인물들을 표현했다. 극적인 카리스마는 작품의 인기를 끌어올리기도 하지만, 조금 지나치다 싶으면 풍자하기 딱 좋은 코미디 소재가 된다. 김영철의 궁예와 보스 역할은 둘 다였다. 그래서 많은 코미디에서 패러디나 흉내의 대상이 되었다.

광고계 관계자는 이번 배스킨라빈스 광고가 이처럼 김영철에게서 비롯된 기존의 코미디 코드를 영리하게 잘 이용한 광고라고 설명했다. 그는 언제나처럼 맡은 캐릭터를, 즉 위엄 있는 왕을 완벽하게 연기한 것뿐이다. 다만 아이스크림 가게라는 곳이 그런 절대적 권위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소이기에 너무 튀는 그의 위엄은 무너질 수밖에 없고 상황은 우스워진다. 그리고 케이뱅크 광고의 이병헌과 마찬가지로 김영철의 카리스마가 사라진 자리를 친근함이 대신한다.

광고에서 반전에 의해 무너진 건 왕의 위엄과 김영철의 카리스마만이 아니다. 알바생의 말문이 막힐 때마다 첫 장면의 장엄한 음악이 그 표정 위로 흐른다. 장엄한 음악이 반복될수록 코믹함은 더한다. 호위무사도 마찬가지. 칼과 호통의 위압감도 반복에 의해 코믹함으로 바뀐다. 사극이었다면 진중한 분위기에 기여했을 요소들이 이 광고에서는 모두 코미디로 변한다.

▲한국야쿠르트 '쿠퍼스 프리미엄' 광고의 김상중(위)과 버거킹 '붉은 대게 와퍼' 광고의 이정재.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한국야쿠르트 '쿠퍼스 프리미엄' 광고의 김상중(위)과 버거킹 '붉은 대게 와퍼' 광고의 이정재.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코믹 반전에 무너지는 건 부조리와 부당한 권위

최근 코믹 반전 광고로 희생된(?) 중년남 연예인들은 이들 말고도 또 있다. 장수 교양프로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자 김상중 씨가 만원 지하철 문에 짓눌리는 한국야쿠르트 ‘쿠퍼스’ 광고에서, 영화 ‘관상’에서 태종 이방원 역할을 맡아 호랑이상을 자랑했던 배우 이정재 씨가 게를 이용한 말장난에 진지하게 임하는 왕으로 출연한 ‘버거킹’ 광고에서 카리스마를 무너뜨린다.

이런 반전 광고는 첫 장면부터 코믹함을 드러내는 콘셉트의 광고와는 다르다. 그런 광고에는 본래부터 코믹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가진 유해진 씨나 전현무 씨 등이 어울린다. 하지만 반전 광고는 앞서 예로 든 광고들처럼, 코믹할 것 같지도 않고 좀처럼 망가지지도 않을 것 같은 이미지의 연예인이 등장할 때 효과가 더 크다.

물론 중년남의 코믹 반전 광고들은 과거에도 있었다. 존경받는 배우지만 인기 스타와는 거리가 멀었던 원로배우 신구 씨는 ‘롯데리아’ 광고에서 “늬들이 게 맛을 알아?”라고 구수하게 외치며 반전을 만들었고, 냉철한 이미지의 중견 배우 임채무 씨도 ‘롯데제과’ 광고에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의 모레노 심판 역을 연기하며 레드카드 대신 돼지바를 치켜드는 반전을 보여줬다. 이 두 배우는 광고가 공개된 이후 젊은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터프가이 배우 최민수 씨도 ‘왕뚜껑’ 광고에서 반전 매력을 보이며, 자신에게 굴레가 되기도 했던 압도적 카리스마를 친근함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최근 여러 예능과 광고에서 활약 중인 이서진 씨 역시 ‘꽃보다 할배’로 반전 매력을 선보이며 엄친아 이미지가 벗겨진 뒤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 경우다.

▲중후한 멋으로 유명했던 중견배우 임채무(위)와 엄친아 이미지의 이서진 등은 코믹한 반전의 모습을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사진 = 광고 화면 캡처)


이들의 사례를 보면, 기존의 이미지가 ‘망가진다’는 표현은 틀렸다. 오히려 친근한 이미지가 더해진 결과다. 이미지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을 내려놓는 여유와 자신감도 증명되고, 코믹한 역할로 자신의 연기 지평을 넓히는 효과도 있다.

이런 코믹 반전 광고로 망가지거나 무너지는 것은 오히려 그 배우가 대변하는 어떤 권위적인 것에 깃든 부당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건 시대에 맞지 않는 왕으로 표현된 고압적인 권력자일 수 있다. 이병헌의 카드는 당연히 세련된 디자인일 것으로 여기는 섣부른 선입견, 상식, 고정관념도 무너진다.

한 문화계 인사는 중년 남자 연예인을 망가뜨리는 광고가 최근 많아지는 이유를 “기득권 대변이 대중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한 뒤로 대한민국 사회의 크고 작은 여러 부조리가 전보다 더욱 많이 지적되고 대중적 논의도 더 활발해졌다. 많은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기득권층의 부도덕함과 그것들을 제대로 해결하지도 못한다는 무능함도 많이 비판 받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언급된 배우들이 주로 연기해 온 ‘성공한 남자 어른’ 캐릭터들이 작품 안에서 권력과 권위를 독점한 인물, 즉 기득권층이었기 때문에 광고에서 그러한 이미지가 부서질 때 대중은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한 “모든 종류의 차별에 대한 반대, 부의 공평한 재분배, 다수에게 혜택이 주어지는 복지, 모든 의혹의 해소와 사회적 정의 구현, 이상적인 민주주의의 정착 등등 최근 대중이 추구하는 다양한 가치가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 탈권위가 시대 분위기에 잘 맞는 광고”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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