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에도 기업들은 많은 광고로 대중과 소통을 시도했다. 그중 특히 우수한 크리에이티브를 선보였다고 평가할만한 광고를 카테고리 별로 3~4편 씩 총 열 편을 꼽았다. 다만, 좀 더 많은 광고들이 언급될 자격이 있다는 생각에 본지에 연재 중인 '광고&기업' 시리즈에서 다뤘던 광고들은 최대한 배제했다.
1. 기술과 자본의 사회공헌
① LG유플러스 우리집AI: '고마워, 나에게 와줘서' 편
② SK텔레콤 기업PR '소방관', '경찰관' 편
③ 유한킴벌리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여고생 그린캠프'
기업은 기술 발전을 선도하며 다양한 문명의 이기(利器)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그 이로움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주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잊어버린다.
2018년 국내외 ICT 기업들이 너나할 것 없이 저마다 '스피커형 인공지능(AI) 음성비서' 기기 및 서비스에 관한 많은 광고를 집행했다. LG유플러스 우리집AI의 광고 '고마워, 나에게 와줘서' 편에서 유성이의 엄마이자 시각장애인인 주인공 현영 씨가 "터치만 하면 다 되는 세상은 저에겐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고 고백하는 순간 이 광고는 여타 광고들보다 몇 단계나 더 높은 차원으로 올라갔다.
SK텔레콤의 기업PR 캠페인 'SEE YOU TOMORROW' 시리즈의 '소방관' 편과 '경찰관' 편은 공익을 위해 위험과 불편을 무릅쓰고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끌어냄과 동시에 기업이 보유한 첨단기술로 이들의 안전과 편리를 한층 끌어올리는 방법을 제안한다.
'미세먼지'가 올해의 키워드로 선정될 만큼 국민의 삶 전반을 바꿔놓은 2018년, 나무와 숲의 중요성도 더욱 커졌다. 유한킴벌리는 여고생 그린캠프에 참여했던 1988년의 소녀들과 현재의 소녀들을 같은 숲에서 뛰놀게 한 감성적인 광고를 통해 30년 넘게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을 펼쳐온 기업이라는 자부심을 강조한다.
2. 웃음으로 대동단결
① LG생활건강 세탁세제 피지: '본격 LG 빡치게 하는 노래' 편
② 뮤 오리진 2: '흥미진진 길드플레이' 편
③ SK하이닉스 기업PR: '안에서 세상 밖으로', '해외 수출' 등등
광고에서 유머는 최고의 미덕으로 통한다. 시청자의 웃음은 광고가 소통에 성공했다는 뚜렷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슷비슷한 농담에 계속 웃어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크리에이터들은 참신한 유머를 만들기 위해 밤낮없이 아이디어를 쥐어 짜내고, 때로는 맥락 없는 반전과 도가 지나친 과장법, 터무니없이 이질적인 요소들의 혼합 같은 다양하고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광고에 따라서는 보편적인 대중 다수는 과감히 포기하고, 특이한 소수의 타깃만 집중 공략하기 위해 과감하고 난해한 유머로 승부를 걸기도 한다. LG생활건강의 세탁세제 '피지'(Fiji) 브랜드 광고 '본격 LG 빡치게 하는 노래' 편은 심지어 이런 게릴라 전략의 광고보다도 더 멀리 갔다.
크리에이터는 90초짜리 광고 제작을 의뢰 받아놓고는, 광고주가 "급한 의뢰인만큼 컨펌 없이 쓰겠다"고 한 것을 약점 잡아 무려 앞부분 70초를 광고주 약 올리기에 할애한다. 을의 과감한 반란이라는 점에서 카타르시스가 있고, 장면마다 정교한 B급 유머 코드가 가득해 유쾌한 웃음이 나오긴 하지만, 완성도는 로 퀄리티(low quality) 중에서도 최저이고, 가사와 줄거리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는 수준이다.
기막힌 반전은 광고 외적인 상황에서 일어났다. LG생활건강이 이 엉터리 광고를 공식 유튜브 계정에 공개한 것이다. 시청자들은 대기업 마케팅 팀이 보인 이런 배포와 관용을 칭찬하며 해당 브랜드에 대한 호의를 표시했고, 각종 패러디 창작물들을 양산하는 바이럴 현상으로도 이어졌다.
'뮤오리진2' 광고는 패러디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오리지널 광고는 배우 조정석이 "야, 너도 영어 할 수 있어"라며 카메라를 향해 거만한 태도로 반말을 해대는 '야나두'라는 인터넷영어학습 브랜드 광고다. '뮤오리진2: 흥미진진 길드플레이' 광고에서는 조정석의 절친으로 알려진 코믹 배우 정상훈이 나와 '야나두' 광고와 똑같은 포맷, 조정석과 똑같은 말투로 연기할 뿐 아니라, "야나뮤"라는 무의미하고 노골적인 단어까지 쓰면서 대놓고 패러디임을 드러낸다.
사물이나 개념을 사람처럼 표현하는 '의인화'는 아마도 인류 최초의 문학만큼이나 오래된 표현기법일 것이다. 그럼에도 더 많은 대중을 더 쉽게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데 이보다 효과적인 기법은 드물다. 세계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 SK하이닉스는 '반도체의 의인화'를 시도한 친근하고 유머러스한 광고 시리즈 덕분에 B2B 전문 기업으로는 드물게 일반 대중과의 거리감을 크게 좁힐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 위로가 되는 공감의 힘
① 경동제약 그날엔: '토닥토닥' 시리즈
② 한국인삼공사 정관장: '추석엔 마음을 주세요' 시리즈
③ 구글코리아 구글어시스턴트: '구글에게 시키세요' 시리즈
④ 동서식품 핫초코 미떼: '화이트 초코' 편
광고는 기업이 대중과 소통하는 수단이며, 모든 소통의 기본은 상호 이해에 있다.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공통의 언어는 필수이고, 공통의 관심사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섬세한 감정까지 이해할 수 있는 '공감'이 더해지면 더욱 친밀하고 특별하게 소통할 수 있다.
배나 머리가 아플 때 약국을 찾는 사람들은 "진통제 주세요"라고 하기보다 "아스피린 주세요", "타이레놀 주세요", "게보린 주세요"라고 말하는 경향이 강하다. 성분은 대동소이하지만 자신에게 익숙하고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브랜드를 찾는 것이다.
경동제약 '그날엔'의 광고 전략도 마찬가지로 브랜드를 강조하고, 빨리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다만, 자꾸 흥얼거리고 싶어지는 쉬운 멜로디의 CM송을 시끌벅적하게 부르는 식의 '강제 주입식' 콘셉트를 지양하고, 내가 느끼는 아픔을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진솔하고 다정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아이유 특유의 속삭이는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2018년 상반기의 '그날엔' 광고는 아이유가 나에게 직접 말을 건네듯 카메라와 아이컨택(eye contact) 하는 광고 시리즈를 내보냈다. 하반기에는 실제로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이 먼저 등장하고, 마치 수호천사처럼 아이유가 곁에 나타나 말없이 토닥여주는 내용의 시리즈로 바뀌었다. 특히 이 토닥토닥 시리즈에서는 두통이나 생리통 같은 몸의 통증이 아니라 불합격, 야근, 이별의 아픔을 전면에 묘사하고 있어, 마음까지 보듬어 주는 사려 깊은 브랜드라는 점을 어필하고 있다.
정관장 광고 '추석엔 마음을 주세요' 시리즈 중 '모녀' 편에서는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는 국민배우 안성기가 아이처럼 "엄마"라며 말을 꺼낸다. 엄마의 건강을 염려하는 자식의 마음을 진솔하게 담은 한마디 한마디가 따뜻하고 고맙지만, 정작 앞에서 듣는 엄마가 안성기와 동년배로 보인다는 점에서는 어색하고 당황스럽다.
이내 안성기가 빨간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은 사실 정관장 홍삼 선물세트의 의인화였기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그가 지금까지 대신 전한 말은 딸이 선물에 담아 전하는 마음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표현할 수 있다는 따뜻한 공감대를 동화같은 판타지로 잘 담아낸 창의적인 광고다.
모두가 거꾸로 매달려있는 플라잉 요가 수업 중 실수로 명상에 방해가 되는 댄스음악이 재생되는 순간,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음식을 주문해야 하는 순간,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알람을 맞추기도 힘들 정도로 피곤하고 귀찮은 순간 등등, 살다 보면 당장 내 일을 대신 해결해줄 누군가가 간절한 순간들이 있다.
구글어시스턴트 광고 '구글에게 시키세요' 편 시리즈가 단 한두 컷으로 간단명료하게 묘사되는 짧은 에피소드로 재미를 주고 호평을 받는 것은, 이처럼 일상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법한 난처하고 당황스런 순간에 대한 공감대를 잘 파악했기 때문이다.
동서식품 핫초코 미떼 광고 '화이트 초코' 편은 어른이 무심코 내뱉은 말을 한창 말 배우는 시기의 어린이가 따라해서 난처했거나 놀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재미있어 할만 한 에피소드를 광고에 담았다.
할아버지(이연복 분)는 짜장은 왜 다 까만색이냐고 묻는 손녀에게 "하얀 짜장도 있는데, 안 먹어봤구나?"라고 대답한다. 반대로, 딸이 타준 핫초코가 하얀 색(화이트 초코)인 것에 이상해하는 할아버지에게, 이번엔 손녀가 "하얀 것도 있지. 안 먹어봤구나?"라고 똑같이 따라하는 이야기다. 일상에 흔한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두 가지 상황이 대구를 이루도록 절묘하게 배치해 손녀의 영악하고, 귀여운 복수처럼 묘사한 것이 돋보인다.
▣ 광고&기업 시리즈
㊶ 롯데그룹: 남성육아휴직 '비로소 경험' 담은 롯데 광고에 "출산율 높이겠네"
㊵ LG오브제 편: 내게 어울리는 가구가 된 가전… 트렌드 잘 읽은 프리미엄
㊴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건설 등 '대기업 표' 웹 드라마 붐
㊳ 부동산앱 편: 구하라 탓 곤혹스런 ‘직방’ vs 혜리 덕 본 ‘다방’
㊲ 롯데ON 편: 온라인 존재감 알려라…심플 메시지로 승부
㊱ SK텔레콤 편: 1020 전용 ‘0’ 티저, ‘TTL 신화' 재현될까?
㉟ 여름광고 ② 여기어때 편: 여름엔 "밖으로 가잔다"…뚜렷 메시지에 흥겨움 덤
㉞ 여름광고 ① 야놀자 편: 브랜드 중독엔 역시 '수능 금지곡'이 최고
㉝ 한화그룹 편: 새 광고 두 편에 심어진 김승연 회장의 아들 사랑
㉜ 월드컵 편: "비장하지만 심심" 공식후원 KT vs. 절묘 모델 기용으로 "5G 선점" SK텔레콤
㉛ LG생활건강 편: 셀프디스 광고에 뒤통수 맞고도 광고주 웃는 사연
㉚ 삼성생명·미래에셋·AIA 편: ‘설명충’ 벗어나 스토리-순간포착 새 스타일
㉙ KEB하나은행, GC녹십자, 한국인삼공사 편: “시작은 미약, 결과는 창대” 올림픽 金광고는?
㉘ 기업 이미지광고 ② 한화, "착해야 광고도 뜬다" 입증한 '대통령의 어부바' 효과
㉗ 기업 이미지광고 ① 롯데, 반세기만의 절실한 이미지광고인데…"왜 이리 단조?"
㉖ 올림픽 광고 승자는? ③ 심플하지만 속깊게 전달한 대한항공 '쿨 광고'
㉕ 올림픽 광고 승자는? ② 치밀한 코카콜라 vs 완성도 아쉬운 노스페이스
㉔ 올림픽 광고 승자는? ① 포스코·아우디: 잘 찍은 공식파트너 광고 vs 너무 영리한 매복 광고
㉓ KT 대 SKT 완전 다른 5G 광고: 국민이냐 사람이냐
㉒ 케이뱅크·배스킨라빈스 편: 카리스마男 무너지니 탈(脫)권위 재미가 쏠쏠
㉑ LG유플러스 편: LGU+ 아이폰8 광고에 “물건사면 소외극복된다는 옛날방식 아쉽네
⑳ 보일러 ② 귀뚜라미·대성쎌틱 편: CM송 꽂아넣은 귀뚜라미 vs S라인만 보여준 대성쎌틱
⑲ 보일러 ①경동나비엔 편: 좋은 스토리·완성도와 친환경 콘셉트로 1위 굳히기
⑱ 대원제약 콜대원 편: 공들인 말장난에 제품 인지도 쑥쑥
⑰ 셀트리온·메디톡스 편: 그냥 달리기만 한 광고 vs 신화까지 터치한 참신
⑯ 삼성-애플-LG 편: 아이폰은 '팀킬', 노트8 보수적…웃는걸 보여줌과 웃게 만듬의 차이
⑮ 한국타이어 편: 뚜렷 메시지+세련 영상…그런데 왜 항상 똑같지?
⑭ G마켓 편: "광고주가 판단미스해도 김희철-설현은 하드캐리
⑬ 카카오페이 편: 첨단은 꼭 명랑해야 해? '쓴 아이콘' 이상민 내세운 잔재미로 "빅히트"
⑫ 롯데하이마트·삼성전자·LG전자 편: 찬 바람은 당연…이제는 똑똑한 에어컨 강조
⑪ 하나투어 편: 현지 맛집이냐 한국서 간 맛이냐, 그게 문제로다
⑩ 알바천국 편: 기업 광고가 이렇게 정치적일 수 있다니
⑨ 하이트진로·오비맥주 편: 광고로 띄운 저가 전략, 알고보니 궁여지책?
⑧ 케이뱅크 편: 알바 20대 vs 쇼핑열광 20대 "어느게 현실?"
⑦ 위메프 편: '재밌지 않은' 정우성이 셀프디스 하는 재미
⑥ KCC 바닥재-창호 편: 딱 33자로 공감 일으킨 카피의 힘
⑤ XYZ포뮬러 편: 화장품 광고에 꽃미녀-미남 아닌 웬 식빵
④ 블랙야크 편: "아웃도어 광고, 꼭 야외서 해야 해?"
③ SKT '티뷰센스' 편: 상투 벗어났지만 속도감엔 아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