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국산 자동차 메이커가 제로백 4초대의 고성능 차를 내놓았다. 4000만 원대 가격에서 BMW 3시리즈나 메르세데스-벤츠 CLA 등과 직접 경쟁하면서 외신 평가에도 좀처럼 밀리지 않는다는 자동차, 기아의 중형 스포츠세단 '스팅어'다.
스팅어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각광받는 편이다. 미국, 유럽 등지에서 2018년 '올해의 차' 후보에 여러 차례 거론됐고, 지난 2월 15일에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개막한 캐나다 국제오토쇼에 앞서 캐나다 자동차기자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최우수차'에 선정되었다.
또한 얼마 전 미국 컨슈머리포트 조사에서는 기존 소유자의 87%가 재구매 의사가 있다고 응답해, 미국 소비자 만족도가 가장 높은 자동차 톱10에 7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국내 마케팅의 핵심은 '소통'
최근 기아자동차는 국내 시장에서 스팅어 마케팅에 새롭게 열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새로운 마케팅 전략의 핵심은 '#ASK스팅어'라는 해시태그 캠페인으로 대변되는 '소통'이다.
이는 사람들이 SNS에 #ASK스팅어 해시태그를 포함해서 스팅어에 관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실제로 스팅어를 소유한 오너들이 직접 질문에 대답해주는 SNS 소통 캠페인이다. 기아차는 이 캠페인이 2월 14일부터 3월 15일까지 진행되며 스팅어 오너 30인의 에이전트가 직접 찾아간다고 소개하고 있다.
차에 대해 궁금한 점은 역시 실제 오너에게 물어봤을 때 가장 솔직하고 리얼한 후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캠페인의 취지다.
스팅어 오너에게 궁금한 점을 묻는 것은 사용자만이 아니다. 기아차는 #ASK스팅어 캠페인을 시작한 날, 스팅어 2.0터보 모델 '플래티넘' 트림에 알칸타라 소재 및 외장 디자인 차별화 요소를 기본으로 적용한 '알칸타라 에디션'을 출시했는데, 이 상품의 개발 과정에서도 '#ASK스팅어'는 큰 몫을 했다.
새로운 스페셜 에디션에 해당 트림을 선택한 것은 그것이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트림, 즉 가장 많은 소비자가 선택한 트림이기 때문이며, 여러 커스터마이징 패키지 가운데 BBS휠이나 리얼카본 패키지가 아닌 알칸타라 패키지를 선정할 때도 스팅어 공식 동호회와 기존 스팅어 출고 고객을 대상으로 관련 선호도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반영한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 부러워하면 좋은 차"?
기아차는 #ASK스팅어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같은 제목으로 만든 새로운 동영상 광고 시리즈를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등 기아자동차 공식 SNS채널을 통해 공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동영상 광고는 메인 캠페인과 다른 점이 있다. 메인 캠페인이 궁금증에 대해 스팅어 실제 오너의 대답을 듣는 것인 데 비해 이 동영상 광고 시리즈는 실제 오너가 아닌 그 '주변사람들'의 생각을 듣는 내용이다. 15초 광고 한 편당 한 사람의 한 마디가 소개되고, 그런 광고가 총 6편 만들어졌다.
“스포츠카처럼 예쁘기나 하지 했는데, 놀랐어. 넓고 좋더라고.” 이는 한 스팅어 오너의 아버지가 자식의 차에 대해 보인 반응이라고 한다.
"우리 차 보고 다들 우리 부부, 멋지게 산대요. 처음에 반대했던 게 미안했죠." 이는 한 스팅어 오너의 아내가 한 말이다.
"1303호? 알죠. 그 잘생긴 차 타는..." 이는 한 스팅어 오너가 사는 아파트의 경비원이 한 말이다.
각각의 '증언'은 목소리 없이 깔끔한 타이포그래피로만 전달된다. 또한 증언을 하고 있는 당사자의 모습은 역광 속에 실루엣으로 처리하거나 얼굴 부분의 초점을 흐리는 방식으로 가리고, 또 이를 슬로모션으로 보여준다.
뉴스나 르포 프로그램에서 인터뷰 대상의 얼굴을 모자이크로 가리고 목소리를 변조하는 것 같은 프라이버시 보호 조치이면서도, 광고 영상답게 이를 최대한 세련되게 연출했다.
그런데 이처럼 증언을 전하는 동안에는 '증인'의 익명성을 강조하는 것 같다가도, 그 뒤에는 '스팅어 오너 윤영우 씨의 아버지 윤정진 씨'라는 식으로 오너와 관계자의 이름을 모두 밝힌다. 프라이버시는 보호하되, 떳떳이 실명을 내건 솔직한 평가라는 자신감이 엿 보인다.
얼굴과 목소리를 드러냈다면 오히려 광고를 위해 대역 연기자를 내세웠다는 오해를 살 가능성이 있었을 것. 스팅어 광고는 이를 효과적으로 피해 가면서도 자연스럽고 스타일리시한 완성도를 갖추었다.
광고의 마무리는 도로를 질주하는 스팅어 위로 뜨는 "타는 당신은 만족하고, 타는 당신의 주변은 부러워하는 스팅어"라는 카피다.
여섯 개의 '증언'을 한데 묶은 1분짜리 버전도 있다. 1분 버전의 광고에서는 "스팅어 출시 620일째. 2019년 2월 2일. 가장 공신력 있는 전문가들의 객관적인 평가를 들어보았습니다"라는 멘트(자막)를 맨 앞에 넣었다.
그리고 여섯 개의 증언이 이어진 뒤에는 "진정한 평가란 부러움과 질투와 인정으로 평가받는 것"이라는 멘트(자막)가 추가로 삽입됐다.
이밖에 15초 버전과 1분 버전의 또 다른 차이는 화면비뿐이다. 15초 버전은 인스타그램의 주된 포맷에 맞게 화면의 가로:세로 비율이 1:1인 정사각형 화면이고, 1분 버전은 16:9이다.
자동차 광고지만 자동차가 화면에 등장하는 비중은 매우 적다. 자동차의 구체적인 특장점에 대한 설명도 없다.
대신 실제로 스팅어 구매를 고려하는 국내 소비자라면 아마도 마지막까지 고민할 법한 지점을 건드린다. 바로 '남의 눈'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평가. 그것도 가족처럼 아주 가까운 주변 사람으로부터의 평가다.
가족을 설득할 근거를 드립니다
우리나라 자동차시장에서 스포츠세단은 그다지 보편적인 차종이 아니다. 실제로 스팅어 출시 전부터 외신들이 아무리 스팅어의 디자인과 성능을 칭찬해도 스팅어의 월간 내수 판매량은 출시 직후의 두 달을 제외하고는 800대를 넘긴 적이 없다.
하지만 잠재 수요도 그만큼 적은지는 장담할 수 없다. 스팅어가 미국에서 잘 팔리는 이유가 있다면, 이는 국내 소비자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요소가 충분히 많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국내 잠재 고객의 스팅어 구매 의지를 결국 꺾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
국토교통부 자동차관리정보시스템(VMIS)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까지 우리나라의 자동차 보유 대수는 인구 2.3명 당 1대다. 여전히 가구당 1~2대의 차량만을 소유하는 수준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가구당 평균 소득 수준에 비하면 대부분의 스포츠세단은 가격대가 높은 편이다.
따라서 한 집에서 1~2대의 차량을 구매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개인의 '취미용'이나 '과시용'으로 여겨지는 스포츠카보다는 통근용 및 가족 나들이용으로 두루 사용할 수 있는 준중형급 이상의 세단 및 SUV 구매율이 훨씬 더 높게 나타난다.
기아차의 스팅어 마케팅 팀이 공략해야 할 대상은 4500만 원 정도의 예산으로 새 차를 구입할 예정인 사람이다. 이들은 패밀리카 용도의 국산 준대형 SUV, 독일 명차 브랜드의 준중형 차, 또는 스팅어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즉, 기아차는 이들에게 스팅어의 실내 공간과 승차감이 동급 SUV나 세단보다 부족하지 않고, 주행 성능이 독일 명차를 능가하는 데다 디자인 면에서도 뛰어나다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기존의 뻔한 영업용 멘트와 광고성 정보보다 더 신뢰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기아차가 선택한 가장 좋은 근거는 기존 스팅어 오너와 그 주변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이다. 그리고 이를 두고 '가장 공신력 있는 전문가들의 객관적인 평가'라고 표현했다. 과장이긴 하지만 웃어넘기기에 충분한 수준의 허세다. 무엇보다 요즘 소비자들은 제품 광고보다 후기를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스팅어의 본질은 과감하고 멋진 디자인과 강력한 주행성능을 자랑하는 스포츠 세단이다. 그리고 이를 내세우는 과시욕은 자동차 구매에서 중요한 고려 사항 중 하나다. "잘 생긴 차 타는 사람"이라고 하는 아파트 경비원의 평가나 "선배님 차 타고 같이 외근 나가면, 내 차도 아닌데 괜히 으쓱하더라"는 직장 후배의 멘트는 이 과시욕을 충분히 건드릴 만하다.
명절에 만나서 "삼촌 차만 타겠다"고 고집 피운다는 조카에 관한 증언이나 남들이 우리 부부 멋지게 산다고 칭찬한다며 "처음에 반대했던 게 미안했다"는 아내의 고백은 성능에 가족들도 얼마든지 만족시킬 수 있는 실용적인 요소까지 갖췄다는 설득력을 전달하기에 충분하다.
"시대 착오적 콘셉트다" vs "공감이 된다"
다만, 광고 아래 달린 네티즌들의 댓글들을 보면, 대중의 반응은 그다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부러움'에서 비롯된 주변인의 멘트들이 다소 주관적이고, 작위적이라는 지적이 많이 눈에 띄고, 자동차를 통한 과시욕을 두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풍조를 옹호한다"며 이 광고의 콘셉트가 한심하고 시대착오적이라고 꼬집는 댓글도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전문가 평가'라고 시작했지만 그 전문가가 겨우 '옆집 누구누구'였다는 점이 기만적이라거나, 진지하지 못하다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공감이 되지 않으면 통하지 않을 농담이라는 한계가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그 돈이면 당연히 BMW 3시리즈를 타야지 왜 어설픈 국산 스포츠카를 사냐며, 애초에 기아자동차나 스팅어 자체를 깔보는 댓글도 적지 않다.
이처럼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댓글은 대개 '4000만 원대 국산 스포츠카 구매를 고려해 본 사람이 가질 법한 과시욕과 가성비와 실용성 사이에서의 갈등'에 대해 딱히 공감하지 않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스팅어나 스포츠카에 대한 구매욕을 가져본 사람들, 또는 이런 방식의 과시적인 소비 욕구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광고의 스토리텔링에 공감이 된다거나, 일상적인 소통을 통해 객관적인 통계보다 유용한 정보를 전달한다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편, 남편은 스포츠카를 원했고, 아내는 이를 반대했으나 결국 구매한 뒤 남의 인정을 통해 자신의 선입견을 인정하고 반성하게 됐다는 '오너의 아내 편'의 스토리를 두고 "젠더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 한 네티즌의 지적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마땅한 비판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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㉖ 올림픽 광고 승자는? ③ 심플하지만 속깊게 전달한 대한항공 '쿨 광고'
㉕ 올림픽 광고 승자는? ② 치밀한 코카콜라 vs 완성도 아쉬운 노스페이스
㉔ 올림픽 광고 승자는? ① 포스코·아우디: 잘 찍은 공식파트너 광고 vs 너무 영리한 매복 광고
㉓ KT 대 SKT 완전 다른 5G 광고: 국민이냐 사람이냐
㉒ 케이뱅크·배스킨라빈스 편: 카리스마男 무너지니 탈(脫)권위 재미가 쏠쏠
㉑ LG유플러스 편: LGU+ 아이폰8 광고에 “물건사면 소외극복된다는 옛날방식 아쉽네
⑳ 보일러 ② 귀뚜라미·대성쎌틱 편: CM송 꽂아넣은 귀뚜라미 vs S라인만 보여준 대성쎌틱
⑲ 보일러 ①경동나비엔 편: 좋은 스토리·완성도와 친환경 콘셉트로 1위 굳히기
⑱ 대원제약 콜대원 편: 공들인 말장난에 제품 인지도 쑥쑥
⑰ 셀트리온·메디톡스 편: 그냥 달리기만 한 광고 vs 신화까지 터치한 참신
⑯ 삼성-애플-LG 편: 아이폰은 '팀킬', 노트8 보수적…웃는걸 보여줌과 웃게 만듬의 차이
⑮ 한국타이어 편: 뚜렷 메시지+세련 영상…그런데 왜 항상 똑같지?
⑭ G마켓 편: "광고주가 판단미스해도 김희철-설현은 하드캐리
⑬ 카카오페이 편: 첨단은 꼭 명랑해야 해? '쓴 아이콘' 이상민 내세운 잔재미로 "빅히트"
⑫ 롯데하이마트·삼성전자·LG전자 편: 찬 바람은 당연…이제는 똑똑한 에어컨 강조
⑪ 하나투어 편: 현지 맛집이냐 한국서 간 맛이냐, 그게 문제로다
⑩ 알바천국 편: 기업 광고가 이렇게 정치적일 수 있다니
⑨ 하이트진로·오비맥주 편: 광고로 띄운 저가 전략, 알고보니 궁여지책?
⑧ 케이뱅크 편: 알바 20대 vs 쇼핑열광 20대 "어느게 현실?"
⑦ 위메프 편: '재밌지 않은' 정우성이 셀프디스 하는 재미
⑥ KCC 바닥재-창호 편: 딱 33자로 공감 일으킨 카피의 힘
⑤ XYZ포뮬러 편: 화장품 광고에 꽃미녀-미남 아닌 웬 식빵
④ 블랙야크 편: "아웃도어 광고, 꼭 야외서 해야 해?"
③ SKT '티뷰센스' 편: 상투 벗어났지만 속도감엔 아쉬움
② SK매직 편: 이질적 기업의 만남을 엮어낸 사운드 마술
① 현대카드 편: 스마트폰 덕에 ‘세로 세상’ 됐는데 왜 신용카드만 가로?